숨쉬듯 가볍게
불면의 밤이 잦다 못해 일상이 되어버리고 '행복하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아니다. 태어나서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 난 과연 있긴 있었을까? 종종 무기력의 덫에 걸린 채 일상을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은 현시대에 행복이라는 정서적 기쁨을 추구하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인 건지조차 의문이다.
매일 밤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곤 한다. 그렇게라도 삶이라는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날아가고픈 내 욕망이 발현되기라도 한 걸까. 숨 쉬듯 가볍게 아픔에 대처하고 싶어서, 숨 쉬듯 가볍게 인생을 마주하고 싶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김도인의 <숨쉬듯 가볍게>.
페이지 41
좋은 심리학 책들을 읽거나 치유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거나 '우울해하지 말아야지'라는 결심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자기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에 김도인이란 사람이 누군지 어떠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저 '마음, 몸, 깨달음' 이 세 가지로 분류해놓은 내용 구성에서 마음을 처음 빼앗겼고, 나중에 가서는 선뜻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날 매료시켰다.
이 책은 여타의 철학 에세이 서적보다 쉽게 읽히고 이해가 빨리 된다. 어찌 보면 현실과 요원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명상'이라든지 심리학, 철학에 대해 저자 김도인이 그만큼 쉬운 말로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증거일 게다. 또한 '시우'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중간중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넣어둠으로써 감정 이입이 더 잘 되게끔 했던 것이 한몫했다고 본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각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기초반 학생들을 위한 맛보기인양 아주 가볍게만 훑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나 부드럽고 편안한 문체로 내 마음을 읽는 내내 부드럽게 토닥여준 김도인의 흡입력 강한 문체가 매우 강점이기에, 이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내가 가장 크게 동감하며 읽은 챕터는 '너무 예민한 나'였는데, 읽으면서 가슴 절절히 하나하나 와 닿지 않는 문장이 없을 정도였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민감성이 높은 탓에 살아오면서 '예민한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이 챕터를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는 이런 자신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페이지 227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확신하기 어려울수록 남들의 인정이 더욱더 중요해집니다.
반대로 스스로를 이해하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행복을 얻고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정신적으로 자립하는 거죠.
보자마자 영화 [예스맨 Yes Man, 2008]을 떠올렸던 '예스 프로젝트',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이해하게 도와준다는 '인사이드 무비', 그리고 '호흡명상', '죽음명상' 등 책에서 제안하는 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해보았다. 그리 긴 시간 동안 수행해보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이기에 뭐가 괜찮더라 가타부타 말할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느낀 점만 간략히 말해본다면-
우선 '인사이드 무비'는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다면 절대 시작도 하지 말라는 거다. 나는 '슬픔'과 '분노' 감정으로 시작했다가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이 우울함으로 치닫는 걸 보고 결국 3일째 되던 날 그만두고 말았다. 반추적 반응이 일어나버려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상처로부터 많이 괜찮아졌다고, 이젠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가장 유용하다고 느꼈던 '호흡명상'은 내 불면증에 꽤 도움이 되었다. 물론 집중력을 기르기 위한 명상 방법이지만 내게는 불면증 완화에 더 도움이 되어 불면증 치료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지만 말이다(책에서도 졸음이 오는 걸 주의하라고 했는데 나는 이걸 불면증 치료로 쓰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죽음명상'을 하면서 요사이 무거웠던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꼈다. 허나 얼마 가지 않아 금세 여러 가지 생각의 물방울들이 빠끔빠끔 다시 내 머릿속을 채운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무감각해진 일상에 지쳐 마음을 다시 되돌려 받고 싶을 때, 혹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지금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여기 나오는 방법들이 스스로에게 100% 유용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내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 주는 저자의 말을 읽고 있노라면 그 자체로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나서 저자의 이력을 되뇌고 있으려니, 문득 내가 계룡산에 가서 수행을 한다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계룡산에 가는 건 힘들지라도, 마음의 숲에 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나가는 건 힘들지 않을 거다. 그렇게 하다 보면 스스로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능력 또한 점점 커질 거라 믿는다.
'숨쉬듯 가볍게' 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때 문장의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엉뚱한 생각부터 떠올랐다. '숨쉬는게 정말 가벼운 일인가?' 한숨 한숨을 세어가며 호흡을 의식하다보면 어느 타이밍에 숨을 뱉고 끊고 다시 들이쉬어야 하는지, 그러다보면 숨쉬는 것이 그저 가볍지만은 않을 때가 있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지만, 의식하기 시작하면 어색한 것들. 숨쉬기. 그리고 마음쓰는 일이 그렇다.
'마음대로 되는' 것인줄만 알았던 마음을 사람들이 돌보기 시작하면서, 마음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숨쉬듯 가볍게'와 책의 저자 김도인은 걔중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히로인으로 진작에 유명인이었던 그녀는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명상이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을만큼 꾸준히 그쪽으로 관심을 갖고 공부와 수련을 쌓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한국에서는 몇몇 정체모를 종교집단 덕에 '도인' 이라는 이미지가 그리 좋지 못하지만, 실제로 도를 닦는 사람들은 남에게 뭔가 영향을 미치려고 하기 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내면 세계에 더 집중하고 단련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배경을 갖고 있는 김도인이 마음을 돌보는 방법으로써 제안하는 것이 '명상'이다.
'숨쉬듯 가볍게'는 그 제목만큼 가볍고 작은 책이지만 타겟, 문제상황, 원인, 구체적인 방법 까지, 그 사이즈에 비해 내용은 알차고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다. 마음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 어느 단계에서 고장이 나는지, 원일을 규명해서 다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알맞은 조치를 취하는, 논리적인 단계를 밟고 있어서 굉장히 쉽게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에서 김도인이 진단하고 있는 문제 상황과 그 원인, 해결의 원리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 읽어봤던 유명 스님들이 썼던 책이나 비슷한 부류의 자기계발서에서도 핵심은 언제나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예의 책들이 원인을 밝혔으니 그것을 고쳐야 한다, 정도에서 끝나는 반면에 '숨쉬듯 가볍게' 에서는 그 마음을 먹는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 예를들어 네번째 케이스에서는 특별한 어떤 것도 필요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호흡을 통한 명상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장점에 대해 주로 이야기 했지만, 그동안 팟캐스트를 청취하며 접해온 김도인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굉장히 균형잡힌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답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그녀의 장점은 책 전반에 걸쳐 묻어나오기는 하지만 책의 컨셉 자체가 대체로 실천적인 내용 위주의 구성이다보니, 평소 팟캐스트 속의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쉽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천적인 방법을 자세히 소개 해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요청이 있었기에 숨쉬듯 가볍게는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한 소리를 하자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들 중 지금의 나에게 해당하는 경우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모든 것들에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 꼭 필요한 때가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한다. 부담없이 곁에 두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책이기에 여러모로 숨쉬듯 가볍게 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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