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힘이 될 때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모든 삶의 무게는 '불안'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불안만큼 인간에게 공포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또 있을까?
불안은 틈만 있으면 우리 안으로 파고들어 '꽃들이 만발한 아릅다운 경치 뒤의 황량함과
빛나는 순간의 이면에 자리한 영원한 암흑'을 보게 한다.
불안은 이토록 독재적이어서 우리의 다른 모든 감각을 앗아가 버릴 수 있다.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우리의 꿈을 침몰시켜 노예를 자처하게 만든다.
'불안'이라는 폭군은 우리 내면에서 무형의 가죽 채찍을 휘둘러,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뿌리며 경쟁에 뛰어들고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34p
이 책은 저자 천궈가 푸단대에서 또는 다른 곳에서 했던 강의 내용에 관련된 것이거나, 강의 중 생각했던 것들에 관한 것이다. 책의 제목인 고독 뿐만 아니라, 성공, 자유, 이타심, 도덕, 품격, 자신감과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느끼는 감정들이나 필요/불필요한 자세들을 이야기한다. 전반적으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때 어조가 분명한 편이며 철학, 동양 고전을 많이 인용하고 있어 다소 공자왈 맹자왈스러운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의 내면에 있으면서 우리의 마음, 정신, 영혼, 인격을 결정한다.
그것은 진정 우리에게 속한 것이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한다.
그것은 우리의 혈관 속으로 흐르고 우리의 전신을 휘감으며 우리의 시야 안에 머무르기 때문에 누구도 앗아갈 수 없다.
또한 '마음에는 영원히 주름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그것을 앗아가지 못한다. 78-79p
최근에 읽은 키르케고르 책도 그랬지만,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의 강도가 더 극심해지면서 이 주제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인간은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고 지금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그 점은 거의 불변에 가까운 사실이었기에 잘 살펴보면 그 이전의 문학작품들 중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것들이 많다. 정말이지 골치 아픈, 인간 본연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규정짓는 초반부에서 저자는 외로움을 '천한 것'으로 단정짓는다. '외로움'을 저자의 방식으로 정의내린다면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고독과 비교당하면서 극복해야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외로움을 책에서 만날 때마다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또 내면이 고요하고 여유로운 사람을 저자는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는데, 이런 사람은 일상이 소중하고 새로워 여행이 필요없다는 맥락도 등장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살짝 당황스러운 지점을 만들어주었다. 낯선 일상의 풍경을 겪는 것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어느 낯선 사람이 내 막역한 벗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열쇠 하나를 주었는데, 이 열쇠로 언제든지 그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나는 이 관계를 특별히 소중히 여긴다. 그와 나 사이에는 절대적인 믿음이 존재하는데, 이 믿음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115p
친구는 쓸모없는 존재다.
우리가 친구를 사귀고, 친구를 필요로 하고,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쓸모 있기 때문이 아니다. 친구는 이용하기 위해서, 감정의 배설구가 필요해서, 위로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잘난 점을 돋보이게 한 들러리가 필요해서, 조력자나 공모자가 필요해서 사귀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배려를 주기 위해서, 마음의 풍요와 삶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마음을 통하는 순간을 맞기 위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기처럼 늘 함께 있다는 느낌과 신뢰감을 느끼기 위해서 친구를 사귄다.126p
삶과 영혼이 모두 빛나기 위한 성공의 두 조건으로 필요한 외공과 내공을 꼽는데 주로 영혼의 충만을 위한 '내공'에 초점을 맞추지만 '외공'의 문제를 터부시하지는 않는다. 부와 재물을 속되게 하는 교화의 위험성이나 이타심을 도덕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오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가장 공감이 갔던 챕터는 '지기'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었는데 지기와의 소박한 교제방식이나 '둘만의 세상'이 필요하다는 점이랄지, 섣불리 지기로 단정짓지 말고 시간에 따라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한다는 내용은 누구나 공감가능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자기 양심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정신적 통제력을 확립해 세상 사람들이 좇는 화려한 세계를 포기했다면, 그는 결코 자유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동경하는 자유를 선택하고 지킨 것이다. 그가 선택한 자기 통제는 도덕을 지키기 위한 희생이 아니라 내면의 청명함과 안온함에 도달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길이다.
그의 즐거움은 남들 눈에 도덕적 본보기나 착한 사람으로 비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 그가 가는 곳이 그가 가기 전보다 아름다워지는 것,
즉, 자아 완성의 과정에 있다. 157-158p
그러므로 우리는 성장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성숙을 처세술에 능하고 닳아빠졌다거나 저속하기 짝이 없다는
의미의 대명사로 여기고 멀리할 필요도 없다.
성숙은 혼탁함이 아니라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럽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맑음이고,
경박함이 아니라 수많은 유혹에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함을 지키는 차분함이며, 쾌감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이 아니라 마음에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명랑한 달관이다.
성숙은 눈에 뻔히 보이는 처세술이 아니라 한결같은 내면의 천진함과 순수함을 가리키고, 인격에 잡히는 주름이 아니라 영원히 주름지지 않는 영혼이다.225p
그렇기에 남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하나하나의 관심, 도움,
심지어 미소 한 자락조차 그가 나를 위해 들이는 애정이자 시간, 정력 및 내면의 선의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날 때부터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발적인 예우 또는 긴요한 순간에 베푸는 은혜다.
우리는 이런 예우에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우리가 받은 행운에 마음 가득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255-256p
자유의 다른 말은 통제인 것처럼 무절제한 자유에 대한 지양은 여러 번 철학 수업에서 들어 조금은 진부하지만, 논리적이다. '인간이기에' 자유를 말할 수 있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품격과 자신감에 대한 단락에서 등장한 맥아더의 자만감 사례는 흥미로웠다. 그의 전성기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 이외에도 사랑, 참회, 호기심 같은 주제들도 뒤따라 온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와 문화가 비슷한 점들이 있어서인지 번역이 굉장히 잘 된 덕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에 한국어 관용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서 집중력이 좋았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관계가 가져오는 피로감이 무겁게 다가오는 순간에 읽으면 좋을 책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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