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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서평] AI가 신이 되는 날 - 인공지능의 발달

by 쓸쓰 2020.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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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신이 되는 날



AI가 문명의 기초를 위협할 수 있다는 예측은 꼭 상업적인 SF 영화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예컨대 스티븐 호킹 같은 정통파 석학들도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간헐적으로 몇 마디씩 한 적 있습니다. 도구로서의 AI가 일상의 다양한 분야에 요긴히 쓰일 수 있다는 전망은 총론으로서는 드물게 나오는 편인데, 이는 아직도 어떤 패턴 어떤 개념의 AI가 상용화 실용화될지 분명한 전망이 서지 않아서입니다.


한편 인공지능의 진단이 마치 신탁처럼 취급되며, 실체를 알 수 없는 권위(그 누구도, 어떤 경로로 그런 결론이 도출되었는지 모르기에)에 의해 휘둘리는 사회를 상정하며 음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이들도 있었는데 저 개인적으로 대중서를 통해 접한 범위에선 주로 일본 학자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 저자는 방향성을 다르게 잡은 셈입니다. 방향성도 다를 뿐 아니라 상상의 전개 폭도 훨씬 넓습니다.


저자는 나이가 지긋한 중견 기업인이며 직종도 컨설팅 분야이지만, 마치 망가를 즐기는 오타쿠라든가 천진한 중학생처럼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는 필치입니다. 제 주위에는 "너무 황당한 논의 아닌가" 같은 반응도 있었습니다만, 논의의 단계가 넘어가는 모습이 흔한 잡담과는 달리 치밀한 상상(논거까지는 아니라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습니다.


AI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장악한 미래처럼)에서도 소수의 인간이 반란군을 조직하여 과거의 자유를 꿈꾸는 몸부림을 벌인다... 이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빈약한 공상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빈틈없는 논리연산체계를 구축하고 완벽한 추론 능력을 갖춘 그들에게 통치력의 누수지점은 없으며, 이런 그들이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인간이라는 종에게 보호 장치를 통해 근근한 생존을 가능케 하거나, 절멸시키거나, 아니면 다른 계로부터 도달한 또다른 AI에 의해 멸망한다거나 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게 그저 기계적으로 경우의 수를 나눈 게 아니라, 그가 경영인으로서 관측한 현 시점의 AI의 기술적 완성도를 놓고 추론한 결과이므로, 예컨대 그들(?)이 레지스탕스의 봉기를 허용하는 시나리오는 과감히 배제도 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공산주의라는 이념 체계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목표를 전혀 달성 못 한 채 현실의 비능률과 자체 모순에 의해 붕괴했습니다. 저자는 일각에서 이는 "기본 소득제" 옹호를 놓고, 인공지능이 초래한 일자리 감소가 전혀 의도치 않게 공산주의 사회의 원형에 사회 구조를 수렴케 하는 결과를 낳는다고도 합니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과거의 종교사를 잠시 개관하며, 어떤 경위로 종교라는 신념 체계가 발흥했으며 어떤 이유로 현재의 거대한 4대 종파가 살아남았고, 역사상의 어떤 고비를 넘다 교세가 쇠퇴하거나 반대로 급격한 발전을 보았는지에 대해 잠시 되짚습니다. 여기서 제가 흥미롭게 본 건 불교에 대한 개관이었습니다. 불교는 일체의 종교 허례 허식을 배제하고, 만사가 공(空)이라는 초월적 결론으로 신도를 이끄는 매우 고차원적이고 소수 엘리트의 입맛에 맞을 만한 교리를 내세웠으나, 그만큼 일반 대중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고도 합니다. 이러던 게 이슬람 교 무장 세력의 침략으로 사원과 승려와 경전이 대거 파괴, 사상, 소실되어, 인도 아대륙에서는 교세를 잃은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고 하네요. 기존의 정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으나 강조하는 포인트가 미묘하게 다른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자가 느닷 종교를 끌어대는 이유는 뭘까요? AI가 바로, 인간의 내면이 끊임없이 갈구해 온 종교적 욕구를 풀어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AI는 첫째 현세의 의문을 놓고 그 압도적인 정보 처리 능력으로 상당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현세 기복에 대해서는, 어차피 고등종교가 이 needs를 해결 못하고 그저 정신적 위안에 그치는 현실에 비추어, 일정 신뢰만 마련되면 넉넉히 종교를 대체하리라 봅니다. 그럴싸한 추정입니다.


저자는 또한 현대 문명이 근본적인 모순점을 안고 있다 봅니다. 현재까지는 요행 혹은 파멸에의 두려움 때문에 전면 충돌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핵무기란 인류라는 종의 기본 생존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거대 변수, 아니 상수입니다.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본주의 역시 정치적 포퓰리즘, 자원 배분 구조의 취약점 때문에 과연 올바로 지속될 수 있을지 큰 의문과 우려가 생기는 형편입니다. 이런 모순과 위기는 현생 인류의 지혜로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며, 사적 욕망도 없고 감정에 흔들릴 가능성도 없는 AI가 올바른 해법을 도출해 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는군요.


AI가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면, 이 산업이나 학문 영역에서 주도권을 쥔 국가가 미래를 주도해 나가는 게 당연합니다. 그 유력 주자로 저자(다시 강조하는데, 일본인입니다)는 중국을 꼽습니다. 전망이 불확실한 각종 산업에의 투자는 민간에 그 시행과 도전의 기회, 성공의 과실과 실패의 리스크를 전가할 수 있지만, 이런 중추적 과제는 전국의 영재(얼마나 인구가 많은가요)를 뽑아 단일 기관에다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연구를 진행시킬 수 있는 중국이 현재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입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이슈와는 무관하나 최근 원숭이 복제를 성공시킨 뉴스가 전파를 타기도 했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AI가 인간의 두뇌 기능을 대신하면 과학을 포함 모든 지적 영역에서 인간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고, 대신 육체를 이용한 활동이 새로이 주목받으리라고 전망합니다. 문명이 대뇌 피질상의 진화를 통해 도약을 겪은 이래 정반대의 방향 전환을 맞는 셈이지요.


너무 과감한 상상과 추론이 잔뜩 펼쳐지지만, 어떤 건 정말 공감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보수뿐 아니라 일에서의 성취감 때문에 그 직무에 전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특히 과학이나 공학 쪽에서 하는 일마다 판판이 AI보다 저성과를 낸다면, AI가 다가와서 "넌 그거밖에 못하니?"라며 무시하지는 않겠으나 당사자의 모멸감이 얼마나 크겠냐는 겁니다. 총이 무장 수단으로 일반화되었을 때 검술의 대가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나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지만, 감정적 선호를 목청 높여 표시한다고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거죠. 어떻습니까?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근본 결함"에 대한 견해도 경청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과학책도 아니고 경영 서적도 아니지만, AI가 부른 거대 체제 담론상의 시끄러운 동요에 대해 한번 조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네요. 이 저자의 주장을 추종하라는 게 아니라, 이 발랄한 주장을 경청하고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따로 발전시킬 촉매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아지면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되어 가기도 하죠.


AI가 신이 되는 날
국내도서
저자 : 마츠모토 데츠조 / 정하경,김시출역
출판 : 북스타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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