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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서평]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 가치투자의 아버지

by 쓸쓰 2020.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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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 분석




벤저민 그레이엄은 전설이라 불려 마땅한, 증권 투자 기법의 귀재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근 한 세기 전에 활약한 분의 통찰과 노하우, 근본 원칙이 이 정도 정치(精緻)함을 자랑하니, 확실히 천재적 두뇌는 남들과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점 절감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레이엄(발음은 "그램"이라고도 합니다) 원저의 완역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원저는 시대 흐름에 뒤처진 대목도 발견되고, 무엇보다 문체가 어려워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한국 독자 기준이 아니라, 영어 원어민을 염두에 둔 평가입니다). 그래서 정말 그레이엄의 레전드 교본을 읽고 주식 투자를 배우고 싶은 분들은, 이런 해설서 내지 요약본을 먼저 접해야 그의 "사상" 진수에 범접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요약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주석본에 가깝습니다. 만약 그레이엄의 원저에 일일이 누가 주석을 달고, 그 주석만 깔끔히 싹둑 뽑아온다면 이런 책 한 권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입니다. 그래서 책의 문장들은 "...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한다... " 같은 투로 아주 자주 시작됩니다. 이는 저자들이, 그레이엄의 저서에 깊은 존경심을 품고 그의 텍스트를 본격 탐구, 분석하면서 느낀 소회, 얻은 깨달음의 빛깔을 간접으로 드러냅니다. "그레이엄의 책인데 왜 문장 주어들이 '그레이엄은..'과 같은 식일까?" 이런 의문을 가진 분들은 책의 취지와 편제에 대해 그리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시면 "증권 분석"이라 되어 있습니다. 증권이라 함은 주식뿐 아니라 채권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한국에서는 채권 투자가 그리 (주식에 비해서는)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그레이엄은 당시에 발표되었던 NYSB의 일곱 가지 평가 기준에 대해 자신의 해설과 비판을 전개합니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현대적 해석과 평가를 곁들이는데, 저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장기적으로 지급의무를 완전히 이행한 실적이 있는 발행 주체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같아도 주식 카페 같은 데에서 여러 날것의 데이터가 나열된 걸 보고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은 까맣게 잊은 채 분위기에만 휩쓸리는 생각 없는 아줌마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자 보상 비율은 여러 방법으로 산출될 수 있는데, 흔히 투자론(재무관리론)에서 말하는 k 개념도 시장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건) 컨센서스로 잡고 요구하는 이율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이자 보상 비율은 어떤 기관이 규율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내 투자금에 이런 성격의 사업이라면 이 정도 보상을 해 줄 만하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 제시입니다. 이 정도 수익률을 약속 못 하는 기업에는 돈을 쓰지 말라는 뜻도 되죠. "금리가 낮을 때 장기채권을 사지 말라"는 금언도 여전히 유효함을 우리는 당장 오늘의 시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통 재무관리 교과서에서 만기가 짧다는 이유로 이율이 낮은 걸 "효율화를 추구하는 자본 시장에서 일종의 불가사의"처럼 취급하곤 하죠. 합리적 판단을 하는 투자라면 그저 기간의 길이만으로 위험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그레이엄은 이런 안이한 태도에 대고 단호한 경종을 올립니다. 즉, "장기 채권을 발행할 신용 등급이 되지 못해" 마지못해 이런 단기 채권이 찍히는 경우는, 투자자들은 오히려 역선택의 함정에 빠지는 꼴이 되니 말입니다.


"안정성은 계약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ㅎㅎ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경험 없는 이들이 사기꾼한테 당하는 가장 흔한 경로도, 객관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걸 자기 느낌만으로 판단하여 자기가 구축한 함정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기꾼에게 속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겁니다. 남한테 속으라고 하면 아무도 속을 사람 없습니다. 사기꾼은 그 사람의 심리적 취약점을 노려, 스스로 환상을 꾸리게 조장한 후, 그 환상에 모든 걸 베팅하게 유도합니다. 주식 투자 초보들 역시 현실에서 별 재미를 못 봤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로로든) 한번 생성된 자기 기준에 요리조리 끼워맞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내 돈 갖고 내가 투자하는 게 무슨 상관인가? 어리석은 투자의 중대한 결과에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질 의향이 있다면 물론 상관 없죠. 그레이엄이 꼽는 "배제 원칙"도 눈여겨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회계학 배울 때 특정 지출을 그저 (일시적) 비용으로 처리할 것이냐, 아니면 "자본화"할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보수적 기준으로야 물론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투자자는 감사인이 아니므로 정 그 회사의 내재가치(너무도, 너무도 중요한 개념입니다)를 평가해 볼 요량이면 후자의 기준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레이엄보다도 더 앞선 이들까지) 지적해 온 진리입니다. 그레이엄은 흥미롭게도, P/L상의 고정 금융 비용에다 22를 곱하여 자본화해 볼 것을 제안하는데, 이는 4.5%라는 철도회사 채권 액면이율(책에서는 "금리"라고 썼군요)의 역수를 취한 것입니다.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이렇게 딱 떨어지는 숫자가 나오면 신기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처럼 근거는 충분한 것입니다(단, 여기서 든 예는 철도회사이며, 당시에 이 업종이 누린 특수를 감안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공공 유틸리티"라는 표현에 현혹되지 말라는 주문도 있는데, 이는 물론 시대상을 고려해야지 현대에 적용될 만한 사항이 못 되지만, 명칭에 혹해 객관적 실태를 살피지 않고 자기 기대만 일방적으로 투영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점은 고금이 다를 수 없습니다.


부동산 저당권이나 저당권부 채권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도 나온 그레이엄의 충고나 예언(?)을 충실히 지키지 않은 탓에, 십 년 전 그런 끔찍한 재앙이 터졌음은(최소한 개인 차원에서는 비껴갈 수도 있었던), 아무리 곱씹어 봐도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서 대체 뭘 배우지를 못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많은 숙고를 하게 만듭니다. 임대차 계약은 간접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보증하는 수단이 된다는 개념도, 물론 그레이엄 이전부터(혹은 동시대에) 이를 제안한 이들이 있었지만(특별한 혜안이라기보다, 거래의 현장에서 부지런히 뛰다 보면 자연 체득되는 "감'"애 가깝습니다), 그레이엄은 그런 "통념"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비판, 분석, 공식화를 시도하는군요. 미묘한 건 이런 임대차 계약이 사실상 수행하는(수행한다고 쳐도) 보증의 "질(quality)"에 대한 평가(혹은 암시)입니다. 고전은 확실히, 구사하는 언어에 상당한 정성과 공력이 깃들기 때문에 해석하는 관점, 전제 조건, 상황에 따라 판이한 결론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흔히 PER이라고 하는 주가수익비율에 대해 그레이엄도 이미 그 시절부터 자세한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량 기업에 대해 그는 과거 5~10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20배를 아예 기준으로 찍어서 내놓습니다. 참고로 현재 한국 증시 기준 코스피 평균은 대개 12.5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20은 상한선이며, 그 이상은 비싸서 매수, 보유 시도의 가치가 없다는 쪽인데, 20이 넘어가면 이미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그레이엄은 주장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대목에서 곰곰히 되씹어 볼 교훈은, 대체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어디에 놓으느냐는 점입니다.


이런 책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증시에서 대박을 칠지 그 비결을 가르쳐 주는" 내용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레이엄도 본문(정확하게는 필자들이 재인용하는 맥락)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처럼, 이런 책의 목표는 요행이나 비정상적인 폭리 쪽이 아닌, 바보스러운 투기, 어이없이 치르는 손해를 막고 합리적이고 건전한 패턴으로 투자를 이끄는 것입니다. 이상한 건,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투자 원칙을 지키는 이들이 10, 20년 지나보면 꼭 부자가 되어 있다는 점, 반대로 일시 남부러운 초 대박을 친 이들이 세월이 흐르면 그 행운을 다 까먹거나 남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하긴 벌써 정상적인 투자관을 못 갖추었다는 증명일 수도 있겠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국내도서
저자 :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 김인정역
출판 : 이레미디어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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