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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서평] 경제의 99%는 환율이다 - 모든 경제는 환율로 시작해 환율로 끝난다

by 쓸쓰 2021.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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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99%는 환율이다 - 모든 경제는 환율로 시작해 환율로 끝난다

 

 

원화가 절상되면 무역에 불리하게만 작용하여 손해인가 보다 여기기 쉽습니다. 실제로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의 현실에 대부분 맞는 이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역으로, 강세를 띤 원화로 더 많은 해외 자산을 사들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플라자 합의에서 일본이 서방 국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탈탈 탈려 오늘의 "잃어버린 OO년"을 불러왔다고만 생각하지만, 강해진 엔화를 기반으로 일본 역시 얼마든지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해 빚은, 자초한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과연, 경제의 99%가 환율로 다 설명이 될까? 우리는 흔히 실물 섹터의 중요성만 생각하고, 그의 그림자에 불과한 자본 분야의 비중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으니까) 간과하기 일쑤입니다. p136의 "원포인트 레슨"을 보면, 무역에 수반되는 외환 거래는, 순수 외환거래로만 이뤄지는 물량에 비해, 고작, 고작 1/40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중국이 기축 통화국이 되기 위해, 예컨대 쑹홍빙의 <화폐 전쟁>에 나오듯(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은, 금 등(특히 은)을 과거처럼 본위로 삼는 새 외환 제도가 필요하다고 나오는 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무역으로 백날 돈을 벌어봐야, 현재 미국이 장악하는 자본 시스템에 새발의 피도 안 되는 도전에 불과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경제는 환율이 99%이다." 책을 펴 읽으면서 그렇게까지나 될까 생각도 했었으나, 이 잘 쓰여진 책의 앞부분 1%만 읽고도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면, 그 나라 경제의 실력, 상태, 건강도가 모두 반영된 게 결국은 환율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한 나라의 경제가 대외적으로 폐쇄된 경우를 상정한다면 또 모르겠으나, 현대에는 어느 나라건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에 의존하여 경제를 꾸려 나갑니다. 그러니 환율은 세계 시장에서 가장 냉정하고 정확하게 그 나라의 경제 성적표를 매겨 주는 지표이며, 앞으로 이 나라의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려주는 예리한 징조이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의 통화나 "지불 수단"으로서의 기능 외에 "가치 저장" 노릇을 따로 합니다. 그러나 세계의 기축 통화인 달러에 비하면 이런 역할은 상대적으로 아주 미미할 뿐입니다. 저자는 "달러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 가치 저장 수단"이라고 평하는데, 세계 경제 주체 어느 누구도 달러를 그저 한 나라의 통화 정도로 여기지 않고, 비상시에 대비한 특별한 자산으로 간주합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는 초강대국 미국의 위신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패권 교체의 기회까지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계 각국은 미국 달러를 (여전히) 대량 보유하는 선택을 했고, 중국 위안화를 마구 서둘러 사들이는 액션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라서, 앞으로 세계에불확실성이 거친다 싶을 때 일시적으로 금값이 오르긴 했으나, 조선족 거주지로 몰려가 "장차 세계의 패권국은 중국이 될 터이니 위안화 꿍쳐 둔 것 좀 주세요! 다 살 테니!"라고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지요. 시장의 심판은 본시 이처럼 냉정한 법입니다. 축구 경기와 다른 점은, 난다긴다 하는 축구 전문가, 도박사들도 결과 예측에 실패하여 돈을 날리기도 하지만, 시장의 "도박사"들은 그저 시장과 세상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판지을 뿐이라는 겁니다(전쟁이 나서 기존 판도가 무력, 군사력에 의해 바뀌는 경우 제외.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시장과 환율은 [혹 가동을 한다면] 전쟁의 성패를 앞서 예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달러화는 세계 외환 시장의 흐름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강합니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씀을 하는 게, 달러/원 환율의 결정에서 달러와 원이 비슷한 비중으로 (마치 상품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어떤 물건의 가격을 결정할 때 같은 만큼 작용을 하듯) 결과를 만들 듯해도(사실, 그런 상식에 의존하는 이들도 별로 없을 듯합니다), 실제로는 압도적으로 달러의 비중이 크다고 합니다(당연하죠). 달러는 원화뿐 아니라, 비슷한 시점에서 다른 통화와 엮여 만드는 환율 쌍(雙) 속에서도 대개 같은 방향으로 동인을 만들 만큼 그 영향이 강합니다. 뉴스를 보시면 원달러, 원엔, 원유로 등은 다른 방향으로 각개약진해도(엔은 오르는데 달러는 내린다든가), 달러가 묶인 곳은 거의 같은 방향으로 형성되는 걸 흔히 보는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달러를 가치 저장 수단으로(지금 당장 한국에 전쟁이라도 나서[그런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외국 통화를 챙겨야 한다면 과연 뭘 손에 넣으려 들지 자신의 심리를 살펴 보면 뻔합니다. 당연히 답은 달러입니다) 간주하기 때문에, 외환 시장의 움직임이 이렇게 가는 겁니다.

 

내가 A라는 여자한테 잘해준다고 치죠. 이런 멋진 매너가 소문 나서, 앞으로 공동체 내 다른 여성 모두에게 두루 인기가 높아질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정반대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런 잔머리 굴리는 전략적 태도가 A에게건, 혹은 이를 객관적으로 지켜 보는 다른 여성에게건 티가 나서, 이 남자가 가볍다고, 딴 속셈이 있다고 소문이라도 확 나면, 이런 tactics는 안 하느니만도 못한 결과가 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애정사가 돌아가는 이치도 이렇거니와, 훨씬 더 복잡한 다양한 변수들의 개입으로 인해 작동하는 시장 경제 체제에서, 각주구검, 수주대토, 교주고슬만큼 어리석은 대응 방안이 또 없습니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얄팍한 밑천으로 피우는 잔재주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본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짓도 안 벌여도 여자는 이런 기본 실력이 탄탄한 남자한테, 그저 호기심 때문에라도 저절로 접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환율이 돌아가는 이치도 잘 설명하지만, 우리가 지금 뉴스를 보며 대체 왜 저러는지 고개가 갸웃해지는 여러 현상에 대해, 아주 직관적인 답을 내어놓습니다. 벌써 십 년 전, 이십 년 전부터 세계 패권을 미국에게서 뺏어온다는 중국은 왜 십 년 가까이 더 나가지도 못하고 제자리걸음일까요? 요즘 인터넷에 보면 "십 년 전부터 중국 망한다고들 했지만 이처럼 굳건하다"고 하는 댓글이 많은데, 어설픈 물타기입니다. 왜 중국의 성장이, 애초 떠들었던 대로 파죽지세가 아니고 오히려 신창타이니 뭐니 하며 구차한 변명이나 내놓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십년 전부터 이뤄진다던 패권은 어딜가고 고작 "아직 안 망했다"는 게 전부입니까? 그간 궁금하던 사항이 책에 시원하게 잘 해명되어 있어 읽고 난 기분이 너무도 가뿐합니다. 별 열 개도 아깝지 않네요. 앞으로 나오는 대중 경제서들이 좀 본받아야 할 내공이고 포맷입니다. 이렇게 후련하고 막힘 없는 책은 근래 처음 읽는 듯합니다. 세계 경제 주제 관련 어느 대중서에서도 다루는 게 "트리핀의 딜레마"입니다. 쉽게말해, 국제기축통화 구실을 하려면 부지런히 달러를 찍어야 하는데, 이렇게 무한정 하다 보면 가치가 떨어져 결국 기축 통화 자격에 지장이 온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적게 찍거나 회수하면 국제 통화 노릇을 또 원활히 못하게 되고요. 이는 그러나 미국에게만 불리한 게임은 아니며, 달러화를 많이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 강할 때 덩달아 이익을 누리게 되나, 미국이 약해지면 자신이 보유한 달러의 가치도 같이 떨어지므로 결국 손익계산서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셈도 됩니다. 저자는 1990년 통독 직후 통일 비용 지출로 거의 파산 상태까지 갔던 독일이 지금처럼 초호황을 누리는 비결은, 단연 유로화의 도입 덕분이라고 합니다. 전 유럽이 같은 통화를 쓰니 이 권역 안에 별 제약 없이 독일 물건을 싼 가격에 수출할 수 있고, 또 원체 독일의 상품이 경쟁력이 강하다 보니 유로존 곳곳에 잘 침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미국(그 외에도 여러 나라들)이 벌이는 자유무역협정 시스템만 해도 완전한 자유무역이라 보기엔 한계가 뚜렷하고, 얼마 전에 봤듯이 한 나라가 불만이 있으면 자유로 탈퇴할 수 있는 등 문제가 큽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강력한, 단일 통화 도입이 (FTA 등보다도) 십 년 앞서 이뤄졌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 맨앞에, "환율은 제로섬 게임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있었던 걸 떠올려 보십시오. 환율 문제를 무려 "단일통화"라는 수단으로 돌파했으나, 유로존 각국이 아예 단일 재정 - 단일 정부로 통합되지 않는 이상에는, 독일이 이익을 보면 다른 나라는 손해를 본다는 뜻도 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유로존이 독일에 조금씩 보조금을 지불하는 셈"이라 요약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독일은 강한 유로, 더 통합된 EU를 지향할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독일은 이제부터 유로존의 다른 국가들에 더 많은 걸 나눠줘야만 할 것입니다. 이때, 지금까지 다른 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독일 안에서도,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는 계층이 늘어납니다(국가 전체로는 이익이라고 해도). 저자는 만약 메르켈 현 총리 이후 그만한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다시 나오지 않는다면, 독일은 자국 국민을 더 우선 달래기 위해(여태 거둔 혜택을 타국보다는 자국 국민에게 먼저 나눠 주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EU를 먼저 깨고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봅니다.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바뀌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저자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p141에 보면 "... 한국에서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 주식 시장에서 자본 유출 요인이 채권 시장에서 자본 유입 요인보다 강하게 작용하여 오히려 원화 약세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경제를 이해할 때 가장 난감한 점은, A라는 사건(원인, 요인)이 반드시 B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anti-B, 정반대 방향으로 튀기도 한다는 겁니다. 한국은행에서 기준 금리를 올리면, 이자율이 유리하니 1) 해외 자금이 한국의 채권 시장에 몰려 듭니다. 그러면 다들 원화를 가지려 하니 원화는 강세를 띨(가치가 올라갈) 수 있죠. 그런데 본디 금리가 오르면 주식시장의 매력이 떨어지고, 특정 국가에서 주가가 대체로 떨어진다 싶으면 외국인 자본은 2) 주식과 원화를 동시에 팔아치울 겁니다. 이러면 이건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요인이 됩니다.

 

환율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걸 알려준 책 처음의 1%만으로도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지만, 책의 나머지 99%는 유익함과 재미를 동시에 얻어 가며 읽었습니다. 사실 어떤 주제건, 올바른 방향이 제대로 잡히면 그 다음부터는 순풍에 돛을 단 듯 빠른 진도를 나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 속에 일단 올바른 맵이 형성되면, 지식의 살을 붙여 나가기도 무척 쉽습니다. 환율이 거시 경제 이해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올바른 시선이 일단 잡힌 후에는, 지금까지 파편적으로 떠돌던 경제현상에 대한 여러 잡다한 지식(오해 포함)이 바른 체계를 이뤄 나가게 되더군요. 환율은 기본적으로 두 나라 통화 간의 교환 비율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체계가 제로섬 게임, 즉 누구 하나는 이익을 본 만큼 다른 당사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또 흔히 한국 미디어에서 쓰는 표현, "환율이 절상되었다/절하되었다"는 옳지 않다고 합니다. 환율이 오르고 내리는 데에는 여러 변수가 개입하는데, 마치 단일한 의지가 일괄적으로 무엇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표현도 소개되는데 REVALUE/DEVALUE 등은 현 경제 체제에서 쓸 일이 많이 않을 듯합니다. 시장이 하는 일은 인위적 조작 같은 게 아니라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많은 방향의 힘들이 끼어든 결과이기 때문이죠.(뿐 아니라, 절상, 절하가 문자 그대로의 뜻이라면, 이 책 p18d에 나오는 대로 그 나라가 아마도 환율 조작의 혐의를 쓸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잘 되지도 않지만) 1)과 2), 두 반대 방향의 힘 중 무엇이 더 강하겠습니까? 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일단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 가치 볼륨이, 채권의 그것보다 거의 여섯 배 가까이 크기 때문에, 2)의 힘이 더 크므로 원화는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 그럴 수 있습니다" 정도로 확신의 강도를 약화시킵니다. 이유는, 이 역시 몇 가지 변수만 고려한 지극히 단순한 모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사가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는데, 몇 가지 단순한 이치만 머리에 넣어 두고 그대로 되기만을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태도가 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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