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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앞 시대를 넘어 현재 우리들이 살아 내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위대한 경영 사상가인 피터 드러커. 한 위대한 정신의 가르침을 내내 머릿맡에 놓아 두고 하루하루마다 소중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생전에 그가 남긴 저작들을 원 포맷 그대로 읽어도 말할 수 없이 유익하지만, 공신력 있는 연구 기관이나 생전 그의 동료였던 권위자가 엣센셜만 간추려 펴낸 아포리즘 역시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고마운 배려일 수 있습니다.
경제학과 경영학
"경영학은 경제학에 비해 학문으로서 밀도가 낮으며, 경영학은 인접 혹은 원거리의 여러 다른 학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뤄진, 주기보다 받기를 더 많이 한 분야일 뿐" 같은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별 의미 없는 편가르기, 서열 매기기의 설익는 소산일 뿐인데, 이 책에서 저는 정반대되는 언명을, 그것도 사상의 거두 드러커의 표현으로 발견했습니다. (이것 관련, p91에서 드러커의 단호한 반박도 역시 들어 보십시오)
"나는 소비자들의 행동에 관심이 있었고, 케인즈는 제품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p22)
드러커와 케인즈는 대략 26년 정도 나이 차가 납니다. 당연히 케인즈가 앞선 세대에 속합니다만, 우리 선입견보다는 그리 많은 차이도 아님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요즘 들어 (저 언급이 꼭 긍런 의도는 아니지만) 드러커가 자신을 케인즈와 나란히 견주어도(혹는 더 높이 평가해도) 그리 큰 무리도 아닐 만큼 뛰어난 위인임에 서서히 동의해 가는 중입니다. 참고로 저는 경제학 전공 출신입니다만.
같은 페이지에서 드러커는 몇 걸음 더 나아갑니다. "... 물론 경제학은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하지만 나는 경제학이 '독립적'인 사회과학 분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경제학적 고려는 인간 사회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결정적 요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제약적 요소이다... "
이 심원한 말씀을 제가 곡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에 대한 우선적 고려가 아닌 합리적 요인만을 비정하게 앞세우는 한, 경제학 논의는 문명의 발전과 공동체의 복리 증진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저는 들립니다. 반대로 또, 선입견으로는 냉랭히 경영자의 입장만 내세울 것 같은 경영학 담론 역시, 그 중심에 "인간"이 위치할 때 오히려 정책 결정의 최우선 인자가 될 수 있고, 나아가 무엇보다도 독립적이고 규범적인 학문 노릇을 하는 게 경영학일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먼저다
이처럼 그는 무작정 공자님 맹자님 같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우아한 외관을 갖춘 채로 대중의 통념 그 허를 찌르기도 하는 촌철살인의 명언만을 빚는 분입니다. 읽을 때마다 "그가 이런 지적, 통찰까지도 남겼었나?" 혹은 "내가 알던, 혹은 그러려니 하던 드러커와는 너무도 결이 다른 의외의 면모가 있다."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또 그때마다 대긍정의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결국은 "사람이 먼저다."와 통하는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p150에는 "우리(경영학자들)는 경제학이 인간적 가치와 관련을 맺도록 접근한다." 같은 말도 합니다. 그가 경제학을 어떻게 보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뒤로 넘어가서 p42도 같은 취지로 함께 참조해야 할 말들이 나옵니다. ("경영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p73에는 다시 케인즈의 유명한 말을 재해석한 언급이 있는데, 이를 통해 이른바 "최적화의 신화"를 비판합니다. ("근본적으로 기업체의 기능과, 경영의 책임에 대한 가치는 대립하는 것이다.") p91을 보면 다시 "경영은 인간에 관한 일"임을 강조하며, "의학보다는 과학에 가까움"을 지적합니다.
지식과 실천
p38을 보면 "교육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를 (먼 미래에는 물론) 현재에도 그 타당성과 유용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제 생각으로는 상아탑 속의 고답성에 머무는 건 지식인, 혹은 지식 노동자로서 의무˯ 방기일 수 있다는 따끔한 현실 인식 촉구로 해석됩니다. 당장 나 자신과 이웃을 위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지식이고 지식이라야 이를 익힌 보람과 긍지가 생길 법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는 같은 페이지에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카스탈리엔의 세계를 은근히 비판하며 반대 논거로 활용하기도 하네요. "너의 지식을 활용할 수 없다면 바보가 지닌 금괴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뒤로 가서 p72에는 "가장 좋은 계획이라 해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이는 그저 '좋은 의도'에 그칠 뿐이다."라는 말도 나옵니다. p114에는 "좋은 의도가 항상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언급도 읽을 수 있고요.
창조와 혁신, 생존
피터 드러커는 근 백 세를 산 분이고 따라서 그가 특정 시기 그토록 긍정적으로 평가해 마지 않았던 일본의 침체상, "잃어버린 30년"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p56에서 그는 "여태 잘 해오던 방식과 자산이 앞으로는 큰 장해가 될 수도 있음"을 거론하며, 바로 일본이 그 반면교사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p21을 보면, "오늘 돈이 잘 벌리는 사업이, 내일은 돈이 많이 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다." 같은 말도 나옵니다. 현명한 사업가는 지금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는 사업체가 불과 얼마 후 처치곤란의 골칫거리가 되어 있을 날을 고민하며, 이 때문에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혁신"이 더욱 절실하다는 평가도 곁들입니다. p68에는 "오늘의 확신은 내일의 우행이 된다"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 모두가 과거에의 집착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공공단체와 경영
"후진국이란 없다. 단지 경영되지 않는 국가만 있을 뿐이다." (p51) 이 말은, 지정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아무리 불리한 출발점에 시작했더라도,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경영의 원리"에 입각하여 나라 살림을 꾸려 나간다면 도달 못 할 성취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증거로, "140년 전 모든 면에서 후진국이었던 일본의 지금 모습을 보라"고도 합니다. 사업체와 공공 단체는 성격이 다르지 않냐는 반박도 가능하겠는데, 이와 관련해서 그는 p181에서 "경영은 사업체보다는 비영리기관에 훨씬 적합한 활동이다."라는 말도 합니다.
경영은 우리 생각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사고작용이고 행동이며 실천에 가깝습니다. 반면 경영은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 정신에게는 그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않음을 냉정하게 일깨우기도 합니다. 드러커는 이와 관련, "미래 예측 따위란 아무 소용도 없다."며 호된 질책을 내리기도 하는데, 우리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면 이런 위대한 경영 구루의 교훈을 하루하루, 일신우일신하는 결의로 자신의 체질 안에 내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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