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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나라 없는 나라

by 쓸쓰 202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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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제목만 보면 왠지 철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조금 묵직한 소설 같다. 묵직한 것은 맞지만 철학을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삶이 나온다. 물론 이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트랜스젠더고, 이것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한 나약한 대학생이 고등학생의 먹이처럼 다루어지는 이야기라면 다르다. 읽으면서 답답하고 불편함을 느낀 것은 그를 괴롭히는 악마같은 고등학생 때문이 아니고 바로 인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무력하고 겁에 질려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인우와 그의 엄마의 삶을 보여준다. 인우와 같이 살고 있는 엄마는 사실 아빠였었다. 여성의 영혼에 남자의 피부를 덧씌운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그 당시 어느 부모가 이것을 인정했겠는가.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여성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이혼한다. 아들을 자신이 키운다. 다섯 살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지만 그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다. 완벽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수술에 필요한 돈이 없다. 태국에서 하는 수술도 쉬운 것이 아니다.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고, 가슴 수술도 해서 옷 밖으로 여성처럼 보이지만 아직 성기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그를 아직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등이 방송에 나온다고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현실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밝히는 것은 아직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인우는 정상적으로 잘 자란 것 같아 보이지만 늘 불안감을 품고 있다. 하나는 자신도 아버지였던 엄마처럼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정체가 드러나 엄마와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첫 번째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두 번째는 아직도 그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이 소설 속에 일어나는 많은 위악적이고 혐오스러운 일들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자신이 나약하고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는 이유 대신 핑계를 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1505호 고등학교 퇴학생에게 강간을 당하고, 돈을 빼앗기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과 1504호 아줌마의 놀라운 공격이 대조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트랜스젠더에 나이까지 많은 엄마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해바라기라는 성 소수자 카페에서 일하지만 겨우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을 정도 밖에 벌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을 대학에 보낼 정도의 노력은 한다.

 

다만 아들에게 일어난 한 사건 때문에 자퇴생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아들인 인우는 보신탕집에서 죽은 개를 태우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죽기 직전의 개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개를 데리고 오면 보신탕집 주인이 죽이고, 그는 개털을 태워 식당에 가져다준다. 이 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겨우 70만 원 정도다. 왜 이런 일을 할까? 의문이 들었다. 다른 알바도 많은데 하고. 나중에 작가는 그가 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나열하면서 도시 생태계 최하층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알려준다. 읽으면서 욕이 나오고 분노했다. 1505호 악마가 보여준 행동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줄 때나 인우가 너무 쉽게 무너질 때 그랬다. 그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실체를 밖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엄마의 문제로 뒤덮으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아주 연약한 초식동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외모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곱상함이 있는 모양이다.

 

악마와 그 무리들이 뒤에서 덮칠 정도다. 읽으면서 환경과 조건만 맞다면 꽃미남 연예인이 될 외모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작가는 그의 외모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주변에서 그를 노리는 여자들만 보여줄 뿐이다. 연약하고 예쁜 초식동물은 언제나 포식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1505호 악마가 바로 그 포식자다. 그를 피해 다니지만 항상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을 악마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들려줄 때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일말의 가능성이 무서운 모양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의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지 아니면 더 내려갈 바닥이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인지 모르겠다. 인우의 삶이 힘겹고 무겁고 달아나고 싶을 때 읽는 나도 같은 감정의 깊이를 살짝 느낀다. 모두 읽은 뒤에도 불편함과 불쾌함이 여운처럼 남는다.

 

나라 없는 나라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문학상 수상작을 처음 읽는다. 이전 수상작들을 찾아보니 제목을 아는 소설이 몇 편 있다. 딱 그 정도다. 소설 <혼불>을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이 문학상이 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는 모른다. 다만 <혼불>이 재간되기 전 절판되어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원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장르 소설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대하장편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진득하게 작품을 읽기에는 끈기가 너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늘 좋은 대하장편소설을 욕심내고 형편이 되면 산다.

 

구한말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했다. 요즘처럼 국정교과서로 역사 문제가 시끄러운 이때, 이 소설은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동학농민혁명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단순히 동학도가 남도에서 흥기하여 무작정 한성으로 진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그 당시 조선과 조선을 둘러싼 나라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간결하게 다루었다. 실제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인물 등을 생각하면 한 권으로 압축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가는 많은 가지를 쳐내고, 핵심 되는 내용과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재현해내었다.

 

그 속에는 동학농민군을 무식하고 미신에 휩싸인 무리였다는 속설을 뒤집는 것도 적지 않다. 아니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의지가 더 굳건하게 담겨 있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의 부산물인지 알 수 없지만 전봉준과 대원군의 만남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상대와 힘을 합치고, 권력을 잡은 후 다시 내부적으로 싸우려는 의도가 나올 때 병법의 기본 원칙이 느껴졌다. 이렇게 소설은 조선 조정과 그곳을 둘러싼 권력의 관계자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다른 한 축은 전봉준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 내용을 가득 채운다.

 

개인적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전봉준 측이 아닌 일본의 힘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김교진 등의 세력이다.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는 독자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소설을 조금 힘겹게 읽었다. 문체나 문장이 그렇게 가독성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취향에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문장에 호흡을 맞추다 보면 읽는 속도가 떨어진다. 최근 나의 독서가 이런 종류와 동떨어져 있다 보니 더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에 적지 않은 인물들이 주연 및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어느 순간 한두 명씩 사라졌다.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데 그들이 개인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소설 속에서 비중 있게 나왔다면 그 어떤 흔적이라도 남았으면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통찰력 있는 인물이었던 이철래가 너무 힘없이 사라졌기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힘의 역학 관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자신의 양심 때문에 고뇌하던 그는 시대를 앞선 모습이었다. 녹두장군, 전봉준. 민요로도 남아 있는 그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의 모습은 아주 인간적이다. 동학 접주들을 만나 세를 규합하고, 그들을 이끌고 봉기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는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전봉준을 한양까지 끌고 가는 과정을 다룬 한승원의 <겨울잠 봄꿈>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아주 짧게 다루지만 두 작품 속 전봉준과 그들 둘러싼 사건들이 조금은 다르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바로 그들의 의지와 노력과 혁명이 역사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결과를 아는 작가의 의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큰 아쉬움은 분량이 적어 충분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한국근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머어마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역사와 작가의 상상력으로 세밀하게 채워 넣을 이야기가 너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친일로 돌아선 사람들의 심리와 그 당시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다루었다면 아주 멋진 정치 소설이 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의 많은 가지를 쳐내면서 적절하게 풀어낸 것에는 박수를 치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고, 비교하고, 분석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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