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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다하우에서 온 편지, 어린 왕자(양장본 HardCover)

by 쓸쓰 202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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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우에서 온 편지

 

다하우에서 온 편지

 

 

역사와 시간은 나라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나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윤색하기 바쁘다. 어떤 나라는 잘 숙성시킨 와인처럼 역사의 진실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고 화장을 했다고 뻔뻔하게 진실을 왜곡한 채 자기 목소리를 내세운다. 이들이 하는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바꾼다. 밖으로는 화려한 말로 열심히 자신들이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 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과거사와 더불어 항상 같이 말해지는 단어가 있다. 용서다. 웃기는 것은 용서란 단어를 피해자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같은 부류끼리 모여 돈을 주고받은 것을 가지고 청산되었다니 이제 과거는 잊고 용서하자니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때라는 등의 말을 한다. 가장 중요한 피해자의 감정은 하나도 감안하지 않고 말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례는 바로 한국과 일본일 것이고, 유럽으로 넘어가면 유대인과 독일인이 될 것이다. 한일 사이는 제대로 청산된 것이 없다면 유럽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물론 미흡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거창하게 역사를 끄집어낸 것은 이 소설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수용소가 있었던 곳이 바로 다하우다. 제목처럼 다하우에서 온 편지가 한 가족의 숨겨진 비밀을 현실에 드러나게 만든다. 무대가 되는 곳은 영국이고, 주인공은 이제 중학생이 된 여학생 제시다.

여기에 외국 이주 노동자 문제를 같이 넣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야기를 과격한 장면이나 상황을 넣지 않고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가득하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일상의 모습과 실수를 제시에게 투영해서 잘못된 편견과 행동의 심리를 보여주고, 왜 그런 변명을 하게 되는지 알려준다. 과거 독일의 유대인과 현재 영국의 외국 노동자들은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으로 각 나라의 국민들에게 나쁜 이미지가 쌓인다. 이 이미지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증오의 배출구로 이용된다. 제시의 경우도 아버지가 파산한 후 프랑스로 일을 하러 간 것이 이 외국 노동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닉을 밀어 다치게 한 사건에서도 가장 먼저 외국 노동자라는 편견을 드러낸다. 이것은 바로 잡히지만 그녀가 외국 노동자에게 질타를 했던 것과 자기 친척과 그 친구들이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행동에서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다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라고 하지 않고 누군가가 주입해준 이미지에 휘둘리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았다고 해도 바로 잡는 되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시에게는 좋은 친구가 한 명 있다.

케이트다. 그녀는 장애가 있다. 하지만 탁월한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 배구 청소년 대표로 뽑힐 정도다. 이런 그녀를 깔보고 비하하는 무리가 있다. 그중 한 명이 제시의 친척인 프란체스카다. 그녀가 케이트에게 내뱉는 말과 행동은 솔직히 유치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어린 케이트에게는 비수와도 같다. 그녀의 감성을 마구 헤집어놓는다. 케이트는 세상의 편견과 부당함에 대항해서 열심히 싸운다. 대단한 의지와 용기인데 그녀가 이것을 즐겨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도 잠깐 동안 내려놓고 쉽지만 현실이 그녀를 그렇게 몰고 간다.

 

제시와 케이트 사이에 일어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갈등 몇 가지는 이 소설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진실과 사실은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왜곡된 안경을 통해 역사를 보면 제대로 볼 수 없다. 제시가 할머니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만나게 되는 진실은 그 과정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신이 그렇게 많이 사랑했던 할머니였기에 역사의 한 시기에 그녀가 저지른 잘못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 용기가 과거에 받지 못했던 용서를 가져다준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인 구성이지만 이 만남이 우리 삶에는 필요하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잘 짜인 구성과 내용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린 왕자(양장본 HardCover)

 

<어린 왕자>를 세 번째 읽었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더 많이 마음속에 다가왔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의 감성이나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책이 바로 <어린 왕자>였다.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상황과 문장은 그 가치와 재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깊은 감동을 줄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깊은 감동은 지금도 느끼지 못한다. 아마 내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어른 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시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번역자 때문이다. 최근에 자주 본 이름이 황현산이다. 그가 낸 산문집도 제대로 읽지 않았고, 그 흔한 번역자들의 이름으로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믿을 수 있는 번역자란 말에 혹했다. 그래서 다른 번역이라면 내가 그 재미를 잘 몰랐던 <어린 왕자>를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다시 읽었지만 낯선 문장과 이야기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집 어딘가에 있을 다른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번역에 대한 감상을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찾지를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귀찮은 것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익숙하고 반가운 것은 변함없이 나오는 그림들이었다. 표지의 그림부터 이전에 읽은 책과 똑같았다. 이때 반가움이 지나간 후 아쉬움이 다가왔다.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장도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언젠가 다른 번역본을 찾으면 몇 쪽이라도 비교하고 싶다. 가끔 같은 원전을 다르게 번역한 문장을 비교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한다. 이럴 때면 원문을 한 번씩 찾아보고 싶다. 어려운 문장이라면 아무 의미 없겠지만 쉬운 문장이라면 나의 해석도 같이 비교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불어를 전혀 모르니 이 소설은 상관이 없다. 처음 기대했던 번역자의 차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자 차이인지 아니면 세 번 정도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만의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세상과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부분이 늘었다. 왕, 허영 쟁이, 술꾼, 사업가 등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분명히 이전에는 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 자 한 자 차분히 읽으면서 어린 왕자의 혼잣말에 집중한다.

 

어른들이 이상하다는 어린 왕자의 중얼거림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보다 오히려 삶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철학자의 말로 다가온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때 묻은 것일까? 가장 유명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시작하여 어린 왕자와 헤어진 후 감상으로 끝나는 여정은 그렇게 길지 않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실제로도 한 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차분하게 어린 왕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가의 그림에 시선을 붙들어 매 놓다 보면 시간이 더 흘러간다. 간단한 그림이지만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보아뱀 때문에 더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물론 있다. 혹시 중요한 뭔가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도 쓸데없는 기우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많은 실수 중 하나다. 모자라고 생각했던 어른이 나였고, 마지막 장면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나다. 내가 이 소설에 깊은 감동을 받지 못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심으로 보아뱀을 보기 전에 먼저 보이는 것이 모자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모자라고 말하기 전에 다른 것이 뭐가 있는지 고민할 것이다.

 

보아뱀이라고 하면 왜 그런지 묻고, 그 답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혹시 실제로 이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말한 아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분석하고 트집을 잡는 것을 보면 아직 순수한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표현을 길들인다 라고 한 것은 소외의 한 모습을 표현한 것처럼 다가온다. 이 부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언젠가 다시 읽게 되면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기를 나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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