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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길 잃은 개, 피처럼 붉다(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1)

by 쓸쓰 2021.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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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개

길 잃은 개

 

절망 끝에 선 남자의 모터사이클 도망 기란 문구에 혹했다. 그런데 그가 떠난 이유는 죽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이 절망에 빠진 그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인도였다. 아버지와의 불화와 집을 나온 후 동거한 여자의 매춘을 알게 된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이전에는 수험의 실패가 있었고, 허영에 들뜬 시간들이 있었다. 이런 사연을 앞에 간단하게 늘어놓고 첫 해외여행을 떠난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간 인도는 가혹하다. 저자가 경험한 것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다른 여행 팟캐스트나 책에서 한두 번 이상 본 것이기 때문이다. 왠지 어색하고 작위적이라고 느꼈던 글에서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도 인도 여행이 길어지면서부터다. 어색하고 작위적이라고 느낀 것은 저자 이력에 나온 사진의 자세와 죽기 위해 길은 떠난 그가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고, 그가 둘러본 곳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기 때문이다. 실제 그가 경험한 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들여다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죽기 위해 길을 떠난 그가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넘어 그가 여행을 하면서 경험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사실처럼 다가온다. 끝까지 큰 무리 없이 다 읽은 것도 그의 경험이 결코 평범하지 않고 거칠고 직설적이기 때문이다. 순간 울컥해서 손해 보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양아치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되짚어보니 연약한 한 남자의 작은 몸부림 정도였을 뿐이다. 한국에서 시작한 도망은 인도를 거쳐 영국으로 다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진다. 이 일 년 동안의 도망은 결국 자아 찾기와 용서에 대한 것이다. 바가지요금은 당연하고 어떤 곳에서는 오토바이 퍽치기를 당하기까지 한다. 런던의 한인식당이 보여준 불법 고용과 저임금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있기에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이런 사장들 반대편에 선 착하고 선한 사람들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쉽게 내민다. 아마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순간 욱하는 그가 무사히 긴 여행을 마친 것은 이런 착한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 영국, 그리스 등에서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던 것 중 하나는 낯선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적의와 공포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많은 착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날이 선 그의 신경과 감정은 그를 평온으로 데리고 가지 못한다. 돈이 부족하다 보니 여행 중 숙박은 아는 사람의 집이나 길에서 자야만 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그를 상상하고, 그때 그의 사진을 보면 왠지 잘 맞지 않다. 이력 사진과 비교하면 더욱 심하다. 몇 가지 상상을 하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그는 심약하고 경계심이 많고 욱하는 성격을 보여줘 낯설게만 다가온다. 사진의 선명도나 몇 쪽의 잘 보이지 않는 글자들을 생각하면 편집이 굉장히 거칠다고 느끼게 된다. 몇 가지 좋은 글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속내를 매끄럽게 표현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진 글은 아니다.

 

도망 기란 말처럼 여행에 대한 정보나 풍경을 보여주는 표현도 거의 없다. 실수를 반복하지만 굳은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은 죽음을 위해 떠난 청년이 아니다. 이 부분이 계속 의문부호를 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다. 읽으면서 본 그의 블로그에 접속이 되지 않아 그의 현재를 알 수 없어 아쉬운 부분도 많다. 방황하는 청춘의 일 년 여행 감상기란 부분에 공감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진한 울림과 감동이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나의 삶이 그가 걸어온 길에 공감할 것이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피처럼 붉다(스노 화이트 트릴로지 1)

 

스노 화이트 트롤리지 시리즈 1권이다.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시리즈 이름처럼 백설공주를 변주한 소설이다. 주인공 이름도 핀란드어로 백설공주를 의미하는 루미키다. 최근에 동화를 변주한 작품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작품도 그중 하나다. 노골적으로 그 원작을 따라 하며 변주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 작품처럼 몇 개의 이미지를 빌려와 새롭게 이야기를 만든 것도 있다. 이 소설은 핀란드 제2 도시 탐페레를 무대로 하고,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고등학생이다. 시작도 고등학교 사진 암실에 걸린 고액의 유로에서 시작한다.

 

시리즈 1권이다 보니 아직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표지에서 느낀 강렬하고 자극적인 액션이나 피나 넘칠 것 같은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아주 인상적으로 시작한 첫 장면에 비교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나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예상이 빗나간 것은 암실에 걸린 고액권과 이 돈을 가진 학생들과의 관계다. 학교 깊숙이 뿌리내린 범죄조직의 일원인 이들과 루미키의 대결을 예상했다. 가끔 학교를 배경으로 피가 튀는 액션이 벌어지는 영화나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생긴 예상이다. 그런데 이 돈은 엘리사가 파티를 하던 자신의 집 정원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피 묻은 이 돈을 씻기 위해 암실에 왔다가 이곳을 명상의 장소로 사용하는 루미키에게 들킨 것이다. 그들은 범죄조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단지 누군가에게 전달될 돈을 주은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 루미카의 과거를 꽁꽁 숨겨놓고 하나씩 풀어내어 보여준다.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기 전까지는 상상력으로 그 빈 곳을 매워야 한다. 루미카가 돈을 가지고 나간 투카를 미행할 때 보여준 모습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하나의 실수로 투카에게 미행이 발각된다. 이때만 해도 투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그의 출연 비중이 낮다. 이 사건 이후 엘리사가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이 전화가 그녀의 삶을 뒤바꾼다. 엘리사의 집에서 그녀를 진정시킨 후 그녀의 빨간 모자를 쓰고 나온다. 이것이 엘리사를 납치하려는 사람들의 착각을 불러온다. 열심히 뛰어 달아난다. 이제 그녀도 하나의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착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학원 액션물로 생각했다. 루미카를 과거를 숨긴 킬러라고 생각했다. 이런 오해와 착각을 가지고 읽다 보니 예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이 때문에 읽는 호흡이 약간 흐트러졌다. 중간에 작가가 집어넣은 몇 가지 이미지가 이런 오해를 더 불러왔다. 결코 루미카가 평범하지 않지만 그런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진실을 알기 위해 북극곰의 파티에 참석했을 때 보여준 모습은 또 다른 뭔가가 나올 것이란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 기대를 아직 충족시키지는 않았다. 많은 떡밥을 던져놓은 상태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광고를 보면 요 네스뵈와 스티그 라르손을 끌고 왔다. 솔직히 이 두 작가의 팬 입장에서 보면 그 정도는 아니다. 다음 두 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아니다. 최종적인 평가는 시리즈 마지막을 읽은 후 나오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지독하게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무대와 계절의 배경이 그 추위를 더 강화시킨다. 약간 감기 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읽어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루미카를 따라다니다 보면 영하의 추위 이미지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하나 더. 아직 루미카의 과거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북극곰도, 투카 등도 그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대감을 불러온다. <눈처럼 희다>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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