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8 남한강 편
제주 편을 읽고 오랜만에 답사기를 읽었다. 일본 편은 아직 읽지 못했다. 답사기의 1편도 아직 읽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는 책이 바로 이 답사기다. 지역으로 나누어진 답사기는 순서가 필요 없다. 자신이 관심이 있거나 가보고 싶은 곳을 선택해서 읽으면 된다. 언제가 이 책이 모두 완간되면 그 폭은 더 넓어질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답사기를 읽을 때면 나의 무식과 여유 없는 일상과 여행들이 생각난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의 답사대에 나도 끼어들어가 같이 돌아보면서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들었다.
이번 답사에서 다루는 지역은 남한강을 끼고 있는 도시들이다. 영월에서 시작하여 제천, 단양, 충주를 지나 원주, 여주 등을 거처 오는 일정이다. 물론 이 일정이 단숨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지역을 정해놓고 당일치기, 혹은 1박 2일, 2박 3일로 다녀온다. 서울에서 출발하다 보니 오고 가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지만 가서 돌아볼 곳이 생각보다 많다.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다니는데 정말 답사에 충실하다. 학구적이지 않다면 결코 쉬운 일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같이 돌아다녀보고 싶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나의 너무나도 미약한 문화에 대한 눈을 높이고 싶기 때문이다. 일정만 놓고 보면 그렇게 길지 않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저자의 긴 세월이 같이 녹아 있다. 많은 참고 사진들이 있는데 어떤 것은 지금 현재의 풍경이 아니라 예전에 작가가 찍은 사진들이다.
여기에 4대 강 사업이니 지자체의 문화사업이니 하는 것으로 강과 그 강변이 바뀌었는데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이다. 댐으로 수몰된 지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수위가 바뀌면서 풍경이 예전과 너무 바뀌었다는 평이나 문화재 보존을 위한 몇 가지 노력들이 시선을 끈다. 관광지로 지정되면서 그 원래의 풍경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을 때는 더 큰 아쉬움을 느낀다. 시끄럽고 난립한 건축물들은 문화재를 조용하고 차분히 돌아보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폐사지 등의 고적하고 조용한 풍경에 더 눈길이 간다. 실제 가면 볼 것도 그렇게 없을 텐데. 책을 읽으면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을 이렇게 다녀도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지역에 대한 답사기를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재와 풍경 등이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한다. 실제 다녀온 곳은 단양 한 곳이지만 다른 곳들은 항상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갈 때 지나간 곳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정말 스쳐 지나간 곳이다. 아주 오래전 국도를 달렸을 때도 그냥 지나간 곳이다. 만약 그때 이 책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 당시 나의 여행은 달랐을 것이다. 목적지 없이 달렸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박 2일이란 방송 때문에 더 많이 알려진 영월. 이곳에 대한 지식은 딱 두 가지였다. 한반도섬과 김삿갓. 하지만 이제는 단종과 다른 문화재들도 같이 떠오른다. 몇 년 전부터 회사 워크숍을 이쪽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갈만 한 곳을 열심히 찾았다. 결과적으로 딱 들어오는 곳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단양은 도담삼봉과 그 주변 풍경을 봤는데 솔직히 그냥 그랬다. 재미있는 곳도 있었지만 아주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 이 책이 있었다면 여행 일정이나 방향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나의 사진이 나를 매혹시켰다. 그곳은 온달산성이다. 표지에서 먼저 만날 수 있다. 각도가 만들어낸 착시효과도 있겠지만 너무 멋진 풍경이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은 그 감동이 엄청 줄었지만 그대로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낯익은 지명은 의림지를 제외하면 그렇게 많지 않다. 중원고구려비나 다른 유명한 유물만이 나의 뇌리 속에 남아 있다.
이것보다 놀랐던 것은 남한강변의 조창들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소요되는 물산의 대부분이 전라도에서 서해안을 따라 인천까지 올라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한강이 조선시대 물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 내 기억의 잘못인지 아니면 역사 교육이 잘못된 것인지 의문이다. 온달산성과 더불어 가보고 싶은 곳 중 한 곳이 여주 신륵사다. 강변에 있다는 이 절이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관광지를 변해 번잡하고 예전이 풍경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지만 몇 장의 사진과 저자의 설명이 나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 외에도 가보고 싶은 곳은 많다. 가본 적이 있는 곳은 다시 새로운 시각에서 둘러보고 싶고, 그냥 스쳐 지나간 곳은 잠시 머물다 가고 싶다. 아마 대부분은 주마간산으로 지나갈 것이다. 제주도 편을 읽고 오름에 관심이 많았지만 실제는 가장 유명한 한 곳만 둘러보았듯이. 그래도 이 기억은 길거나 짧은 여행에 많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왠지 이번 답사기는 유적과 풍경과 역사보다 여행으로 더 다가온 것 같다.
그레이맨
최강의 킬러가 나타났다. 그의 별명은 그레이맨, 본명은 코트 젠트리다. 책을 읽기 전에 대단히 재미있다는 평을 읽었지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런 평을 너무 많이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으니 진짜였다.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미드 <24>의 잭 바우어처럼 한정된 시간 안에 적을 물리치는데 그 능력은 몇 배나 더 뛰어나다. 최근에 이런 종류의 액션 스릴러를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기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영화로 제작 중이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2시간 동안 전설적인 킬러의 어마어마한 활약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젠트리는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고 북부 이라크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때 미군 헬기가 추락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그냥 지나가야 한다. 그의 전직이 CIA 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 아니 현재 그가 벌이는 살인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보면 더 분명하다. 돈을 위해 살인을 하지만 그가 선택한 목표들은 모두 악당들이다. 추락한 헬기 속 미군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다. 알카에다나 다른 지역민들이 이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가려고 한다.
힘없이 쓰러진 그들에게 폭력도 가한다.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몇 명을 죽인다. 낯선 곳과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지역에서 그를 향해 다가올 포위망을 힘겹게 벗어나야 한다. 이때만 해도 그가 얼마나 전설적인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킬러들이 홀로 활동하지만 그들을 연결해주는 사람은 꼭 있다. 이 소설 속에서는 피츠로이 경이다. 그레이맨은 그의 관리 아래에 있다. 그에게 내려진 살인 명령은 나이지리아 산업부 장관 아이작 아부바커 박사 암살이다. 의뢰인이 죽어 암살이 취소되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죽인다. 그런데 이 암살은 나이지리아 아부바커 대통령 동생을 죽인 것이다. 대통령은 로랑 그룹과 엄청난 계약을 맺으려는 단계에 있었다. 이 암살이 있기 전 계약서 상에 작은 실수가 있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대통령은 그레이맨의 목을 원한다. 로랑 그룹의 전력이 투입된다. 그 일선에 선 변호사는 전직 CIA 소속이었던 로이드다. 그는 그레이맨의 정보 파일을 가지고 있고, 피츠로이 경을 협박한다. 그의 아들 내외와 손녀딸의 목숨을 가지고. 젠트리를 구하기 위해 온 조직이 피츠로이의 전화 한 통으로 살인자로 변한다.
하지만 낌새를 알아챈 그레이맨은 반격을 가한다. 첫 번째 사살 작전은 실패한다. 이때 로드니는 로랑 그룹의 보안실 담당 리켈에게 연락한다. 이틀 안에 그레이맨의 목을 가지고 와야 한다. CIA에서도 제거 명령이 떨어졌고, 그의 목에는 엄청난 현상금이 걸린다. 그를 잡기 위해 전 세계 암살조직이 움직인다. 그중에 한국 국정원 소속 김성모도 있다. 한국 킬러라서 그런지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그리고 그의 비중이 다른 암살단보다 높다. 이제 정보가 차단되고,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그레이맨은 수많은 조직의 눈을 피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가 걸어가는 길에는 피의 강이 흐른다. 처절하다. 통쾌하다. 이라크 북부에서 시작한 그의 탈출과 반격의 경로는 프랑스 노르망디까지 이어진다. 비행기로, 기차로, 오토바이로, 자전거로, 자동차로 움직인다. 그가 만들어둔 몇 곳의 안식처는 알려진 곳도 있고, 숨겨진 곳도 있다. 알려진 곳은 몇 명만 겨우 안다. 이것은 상대방의 배신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다리는 총에 관통상을 당하고, 팔과 손목은 부어오르고, 나중에는 배속으로 칼이 들어오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기존에 본 주인공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는 것에 반해 그는 이것도 쉽지 않다. 암살단이 그를 찾아와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수면 부족과 육체적 피로도가 엄청나게 쌓여가지만 그의 불타는 의지는 잠시도 꺼지지 않는다. 읽으면서 계속 영화가 생각났다. 킬러의 세계는 냉혹하다. 하지만 그레이맨은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 정의감도 가득하다. 그렇지만 냉혹하고 잔혹한 킬러의 본능은 어쩔 수 없다. 왜 저렇게 갈까 하는 고민은 이야기의 속도에 밀려 뒤로 처져버린다. 그의 암살행에 대한 이유가 이것을 대신한다. 당연히 이런 주인공이라면 후속 편을 기대하게 된다. 몇 편 더 나왔다고 한다. 이 책의 성공이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바로 후속 편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따뜻한 심장을 가진 냉혹하고 거칠 것 없는 킬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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