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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서평] 생각 버리기 연습 - 코이케 류노스케

by 쓸쓰 2020.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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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생각 버리기 연습 - 코이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사람을 정말 지치고 피곤하게 하는 건 육체적 수고가 아닌 듯합니다. 어떤 분들은 일부러 여가와 비용을 들여 자신의 몸을 고되게 함으로써, 존재의 확인으로 쾌감을 맛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일상에서 직장에서 상처를 종종 입곤 하는 우리이니, 어떤 방법으로건 그 힐링이 필요합니다. "힐링책"으로서 이 책이 그처럼 뜨거운 반응을 독자들에게 얻었는지는 제가 무심한 탓에 솔직히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나마 입소문으로 이 특별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고되어서가 아니라 비생산적이고 불건전한 생각이 우리를 지치게 하며, 그런 생각을 버리는 게 마음을 낫우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인 줄, 이 책을 읽고 비로소 확실히 동의하게 되었네요.


"주위에 기관총을 발사하듯이 변명을 난사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변명을 일삼는 사람은 대개 어설픈 무대 기질이 많습니다. 전후 관계는 누가 봐도 바보 아닌 이상 뻔하게 드러나고 짐작 가능합니다. 그런데 일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만 혼자서 바쁘고, 아무도 안 믿는 변명으로 연극 한 편이 꾸려지기라도 하듯 뻘짓으로 참 열심입니다. 그 사람 딴에는 변명을 이렇게 늘어 놓아야 남들이 편해지겠거니 덜 상처 받겠거니 여기는데, 실은 지극히 이기적인, 자기 마음 달래려고 열심히 뭘 고안하는 게 보통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변명 자체가 주변에 난사하는 기관총"이라고 꼬집습니다. 이런 구차한 변명 끝에 구색맞춤이나 하듯 한 줄 덧붙이는 "사과" 역시, 상대의 힐링을 위한 정성이 아니라 "내가 이 정도로 자신을 낮출 줄도 안다"는 비뚤어진 과시이고 위선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오로지 내면에 뻥튀기된 에고만 가득할 때 이런 행태를 흔히 내보이죠.


오감 외에도 확실히 사람에게는 외부 사태의 진상이나 상대의 마음을 알아보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합니다. 저자는, 불교에서 이 오감 외에 "의(意)"를 더해서 육문이라 일컫는다고 우리 독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네요.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감각 그 자체에 집중하면 묘한 쾌감이 얻어지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느껴진다"와 "느낀다"의 차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느껴진다"는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축축한 습도 때문에 일어나는, 누구나 "느껴질 만한" 불쾌감입니다. 그러나 온도에 대한 "생각하기"를 멈추고, 감각 그 자체를 집중해서 느끼면, "어떤 온도에서도 사람은 상쾌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이런 경지에 오르려면 여튼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겠으나, 추위는 몰라도 더위 속에서는 우리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덥다고 연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서늘히 흐르는 땀 속에서도 내 신체가 건강히 생리 작동하는구나 같은 느낌은 한 번 정도는 누구나 받으니 말입니다. 일단, "습도가 높고 온도가 이 정도니 나는(혹은 누구라도) 불쾌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이런 편안한 마음을 찾을 수 있겠죠. 저런 생각이 끼어들면 그냥 견딜 수 있을 만한 고통도 더 버겁게 느껴집니다. 스트레스란 말이 스트레스를 더 부른다는 것처럼요.


저자는 특히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해 경고합니다. 저자의 말을 잠시 인용하면

1. 다른 사람의 실패를 비웃는 우월감

2. 갑작스레 허를 찌르는 공격성

3. 부조리한 말과 몸짓에 의해 생기는 혼란 (pp. 124~125)


이런 요인, 동기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원인인데, 이런 웃음은 첫째 그 유발이 자연스럽지 않고, 둘째 웃는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 속에 긴장을 불어넣고, 셋째 자신의 현실을 잊으려는 불건전한 욕망이 자라며, 넷째 ̳중이나 무대의 희극 배우가 웃고 웃기는 타인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는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들어 보면 모두 타당한 지적입니다. 저자는 또한 이런 프로그램을 보며 웃는 사람은, 웃고 있어도 뭔가 표정이 밝지 않고 일그러진 구석이 생긴다고 하는데, 옆의 시청자나 TV 속에서 웃어 대는 관객들을 봐도 확실히 맞는 말입니다(안 보이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저자는 지금 TV 프로그램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밝고 자연스럽고 건전한 웃음이라야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됨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독한 약이 어떤 환자에게는 필요할 수 있듯, 그런 프로그램도 꼭 봐야 할 사람이 있겠지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더 흥미와 집중도가 높아지는 게 우리 인간의 뇌입니다. 먹는 동안에는 스트레스가 풀리고 다른 생각이 사라지기에 현대인들은 더 먹는 일에 집착하고 과체중으로 고생합니다. 다이어트를 해야지! 같은 강박 관념은 어떤 체중 감량 결의로 이어진다기보다, 이렇게 독하게 다이어트 결심을 했으니 지금은 좀 먹어야지! 같은 보상 심리로 이어집니다. 벌써,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강박 관념이 생기는 그 자체가, 먹는 데에 엄청 신경 쓰고 집착한다는 불 같은 반증입니다. 정말 살이 빠지는 사람은 다이어트란 생각 자체를 안 떠올립니다. 체중계에 올라가서 경각심을 다지는 게 아니라, 먹고 싶어 죽겠는데 왜 이리 눈금이 안 내려가냐며 속으로는 오히려 더 뭘 먹을 각오를 불태우는 거죠. "생각 버리기"란 이처럼 살 빼는 과정에서도 중요합니다.


왜 이렇게 저장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일까요? 오죽하면 미니멀리즘, 버리고 살기에 대한 책들까지 많이 출간되겠습니까. 저자는 특히 "사람은 마음 한 구석에 무엇을(무엇이든 간에) 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역으로 이런 욕구가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고 이어져 저장 강박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생각 버리기"라는 코드 하나로 이처럼이나 많은 현상에 대한 일관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이 어두워진다" 왜냐하면, 여태 무엇을 모으고 간직해서 그만큼 기분이 좋아졌으나, 이것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 추락에의 공포가 사람의 생각을 반대방향으로 옭아매기 때문입니다. 이걸 잃어버릴 때에, 종전의 초라했던 상태로 돌아가는 건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주며, 컬렉션의 남겨진 일부만 지켜 볼 때의 느낌은 마치 신체의 일부가 손상된 양 좌절을 안깁니다. "아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만도 못해!" 허나 어디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다 가진 건 불안해서 좋지 않고, 일부만 가진 건 잃은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괴롭고, 다 잃은 건 결핍의 모멸 때문에 또 못 견디겠고.... 역시 답은 집착과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것입니다.


그럼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진짜 해답은 무엇이겠습니까? 대개, 무엇을 모으는 데 집착하는 사람은 참된 자존감이 낮습니다. 억지로 가장하는 허영이나 허세가 아니라, 내가 진짜 어느 정도 가치의 인간인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변변치 못하므로, 물욕과 수집욕으로 이를 만회하고 싶은 거죠. 대범하게 무엇인가를 버려 버릇해 보면, 의외로 참된 나 자신과 더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들여다 보면 누군들 왜 내면의 튼실한 장점, 자신만의 미덕이 없겠습니까? 이럴 때도 사람은 일단 잡된 생각을 버려야 정직한 자신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불교의 가르침을 자주 인용합니다.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대범하며, 대범한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어느덧 자긍심이 생깁니다. 참된 자신감, 자존감이 생기면 쓸데없이 꼬리를 무는 잡생각도 잊혀집니다.


생각 버리기를 올바로 깨친 분이 만약 부모라면, 그 부모는 아이에게 학습 동기를 불어 넣어 주면서도 건전한 소통을 동시에 이룹니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얼마나 부모님들이 아이 교육에 열성입니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데,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부모의 욕망을 대리 만족시키려는 꼭두각시로 나를 취급한다고 여겨, 심지어는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 열성으로 아이를 대하는 부모님의 자식 사랑이 얼마나 극진한지도 모르고 말이죠.


저자는 아이를 대할 때, "나는 너를 언제나 받아들이며, 너의 점수가 아닌 너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전해 주라고 충고합니다. 이런 충고를 하면, 마음이 근본에서부터 비뚤어진 자는 꼭 "뻔한 소리, 하나마나한 소리"라며 거부부터 하고 봅니다. 심사가 이처럼 배배 꼬인 사람은 부처님이 와도 교화 못 시키고, 크리스퍼 기법을 써도 인간 개조가 안 됩니다. 나아질 가망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 안에 작으나마 희망의 씨앗이 자라야 하는데, 어미가 밖에서 아무리 알을 쪼아도, 그 저주 받은 어린 것(늙은 것?)이 도통 나올 생각을 않으면 뭐 방법이 없는 거죠. 쓸데없는 생각만 가득한 사람은 언제나 이런 가당찮은 허세로, 빈약한 지성을 벌충하려 듭니다.


저자는 참 재미있는 말씀도 많이 하시는데, 예컨대 병문안을 와서는 막 우는 사람이 꼭 있다는 겁니다. 이런 불안하고 절망적인 기운이 환자에게 전염되면, 이건 숫제 병문안을 안 오는 것만도 못한 결과이죠. 그러면서 저자는, "이런 이들에게 걱정은 남이 진짜 걱정되어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취미 활동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사람들인데, 이런 이들이 생기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머리에 불필요한 생각이 너무 많이 자리해서입니다. 올바르지도 않은 생각이 머리에 똬리만 틀었으니, 정작 필요한 생각이 퍼뜩 떠오를 리 없고 느는 건 남탓 스킬 뿐입니다.


3부에서는 뇌과학자 이케가야 유지 박사와, 이 책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과의 대담이 이어집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음 수련의 대가, 생각 버리기의 달인인 스님, 일본 최고의 뇌과학자가 만나면, 누가 누구에게 더 궁금하고 묻고 싶은 말이 많을까요? 이 책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을 한번 보십시오.


"전에는 명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사회 생활에 꼭 필요한 투쟁심이 사라져서 곤란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자기 통제력'의 이점이 훨씬 클 것 같군요."


좋은 책은 이처럼, 행여 독자의 마음 속에 남은 한 점 의구심마저, "네 마음 다 안다"는 듯 말끔히 씻어 주고 마무리짓습니다. 정말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생각 버리기 연습
국내도서
저자 : 코이케 류노스케(Koike Ryunosuke) / 유윤한역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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