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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서평]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by 쓸쓰 2020.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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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잔잔하고 마냥 착한 듯하나 엄청난 울분과 정의감의 격동을 담은 장편을 지은 알레산드로 다베니아에 대해,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젊은 작가라는 소개가 책날개에 있습니다. 그렇기도 하고, 현지의 지인한테 잠시 물어 보니 "젊은 독자층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도 불려진다고 합니다. 적잖이 다른 규정 같지만 의외로 같은 지점으로 통하는 면이 큰 글들인데, 평이 중요하다기보다 독자들이 책을 직접 읽고 그 맛을 느껴 보는 게 맞지 싶은 그런 장편이더군요. 젊은 작가분이 과연 사랑 받을 만하게 작품을 쓰셨고, 젊은 독자층이 지지와 호응을 보낼 만한 내용과 주제, 그리고 맛갈난 표현과 통찰들이 많았습니다.


다베니아 선생(현직 교사 신분입니다)는 젊은 축에 속하는 게 맞습니다. 이 자전적 소설에서 1인칭 주인공 페데리코의 고백과 술회를 통해 무시로 드러나는 각종 대중문화 코드를 봐도 분명히 증명됩니다. p70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죽 나열하면서 U2의 보노가 나온 포스터를 든다거나, 텔레비전 시리즈물 <맥가이버>, <A-팀> 같은 걸 대뜸 리스트에 끼워 넣습니다. 이런 건 한국에서라면 페데리코가 자라던 시절보다는 좀 이른 시기에 대중의 사랑을 받던 아이템들인데, 한국(남한)과 시칠리아의 갭이 그 정도였는가 보다 하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A-팀'은 아마 번역가 이승수 선생께서는 모르셨나 봅니다. 특정 세대라면 KBS 2TV에서 틀어 주던 '에이 특공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요.


현대의 대중 문화 세례를 받고 자라닌 세대라면 당연 저런 코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만 페데리코는 또래들과는 다른 아이입니다. 어떻게 다르냐. 고전과 인문을 무척 좋아하며 그 질서 정연하고 정돈된 아름다움 속에 폭 빠져 시공을 초월한 꿈을 꿀 줄 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페트라르카와 단테를 두고 정말 그 본연의 매력에 흠씬 취할 줄 알기란, 싸구려 대중 문화의 해로운 중독과 "피폭"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이나 딱 어렵습니다. 마땅히 완상하고 탐독할 줄 알 만한 멋진 고전의 담백한 맛을, 감미료와 첨가물에 길들여진 (어린) 혀가 수용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데, 형 여친인 코스탄차 말마따나 페데리코는 천상 시인의 자질을 타고났나 봅니다.


페데리코를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은 그의 "스타일"을 두고 바로크적인 과장이 가득하다고 하지만, 그게 깎아내리는 말투이거나 시정을 요구하는 지적은 아닙니다. 그저 글쓰기 산물들이 (어른이 보는 눈에서) 애답지 않다는 것일뿐 고전 소양의 촉촉한 축복을 받았다는 분명한 인정이기는 하니 말입니다. 이런 애들이 커서 정말 일류 문장가로 성장할 수 있는지는 몇 고비를 더 넘길 필요가 있겠으나, 여튼 어려서 고전 많이 읽고 그 인문적 축복을 받은 애들은 페데리코뿐 아니라 다들 꼭 글을 그런 투로 씁니다.


p79에서 페데리코는 이탈리아어 단어 몇을 갖고 재치문답형 습작을 몇 행 써 나갑니다. 사실 나이에 비해 그리 성숙한 솜씨는 못 되고, 진짜 천재라면 초등생 정도 때 남길 법한 수준이긴 한데 얘는 지금 고등학생이거든요. 한번 보십시오.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사(항복. resa)보다

로사(장미, rosa)가

나는 더 좋다.


그 다음은 s 하나가 덧붙은 단어쌍으로 장난을 칩니다.


북적임에도 불구하고

레사(ressa, 군중)보다

로사(rossa. 빨간)가

나는 더 좋다.


어째 ressa와 rossa가 순서가 바뀌어야 뜻이 더 통할 듯합니다만 뭐 페데리코 지 생각이 그런가보다 하고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수사의 정석에 대해 한 마디 해 줄 수도 없고, 괜찮은 학교를 다니는 녀석이니 그 담당 교사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가르치겠죠. 제가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이탈리아어라서 이런 말장난이 2연에 걸쳐 이어지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스페인어라면 자음의 geminate가 매우 드물어서 저런 s, ss 자음 교체로 의미의 차별화가 이뤄지질 않습니다. 요런 장난으로 혼자만의 기쁨을 누리는 페데리코는 시칠리아에 태어나길 아주 잘한 것 같네요.


시칠리아는 유럽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섬이며 이탈리아의 국가적 통일이 그만큼이나 늦은 역사를 감안하면 반 독립국이었다고 봐도 됩니다. 통치하는 왕조가 여러 번 바뀌었고 나폴리와 한데 묶였다가 상속과 협약에 의해 다시 다른 손에 양도되었다가 뭐 운명도 복잡했습니다만 주민들은 언제나 저항과 딴청피우기 기질을 손에서 마음에서 놓은 적이 없습니다. 자연, 공적 통치 기구가 제 구실을 못 했고 치안 유지와 정의 구현은 토호, 마피아들의 손에 맡겨졌는데 물론 이들이 그런 일을 제대로 해 낼 리가 없습니다. 버젓한 서유럽 문명 국가에서 깡패들이 사실상 공포 통치를 이어가는 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페데리코는 그래도 운이 좋은 아이입니다. 팔레르모의 유복한 집안에서 부모님의 따스한 훈육을 받고 자랐으니 말입니다. p42에 보면 "펠레르모"의 어원이 pan ormus, 즉 "모두가 항구"라고 나옵니다. 한참 뒤로 넘어가 p309에 보면 앞의 어원 설명이 잠시 반복되다가, 그리스- 로마 인들의 지배가 끝나고 아랍인들이 진출했던 시절 "발라름"이라고 불렀다는 "후일담"이 이어집니다. "항구"라는 정의(definition)을 버리지 않으면서 이 고장 특유의 짙은 향내 또한 반영하는 명칭이 바로 저것이라는 뜻이겠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2부가 다 끝나가는, 소설 전체의 결말에서) 하는 걸까요? 지중해 건너편 피붓빛 검은 이웃들의 사정에도 눈 감지 말자는 뜻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아니지만 북아프리카 난민의 참상은 소설 창작 시점에서 현재 진행형 아니었겠습니까.


부촌에서 자라난 문학소년, 시인인 페데리코는, 존경하는 신부님(진정 존경을 받아 마땅한, 성자와도 같은 분입니다) 돈 피노와 세대를 초월해 친해지면서 팔레르모와 바로 이웃한 브란카치오의 암울한 풍경에 대해 처음으로 시선을 주게 됩니다. 아주 어린 꼬마인데도 세파에 찌들어 온갖 못된 짓에 물든 프란체스코(저는 처음에 얘가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도 다독거리고, 근심 모르고 살아온 "시인" 페데리코에게는 세상의 반대편 지독한 그늘, 아니 지옥을 잠시 구경도 시켜 주고, 깨어 있는 양심과 영혼이 결코 눈 감지 말아야 할 진실에 대해 오버하지 않고 위선 떨지 않고 거부감 안 느껴지게 차분히 깨우칩니다.


페데리코에게는 형이 있는데 형제가 다 총명하긴 하나 형은 좀 세속적이고 현실적으로 약아서 공부에 전념하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남들이 다 선망할 만한 엘리트로서의 삶을 꿈꾸는, 약간은 속물인데 여튼 자신의 기질과는 매우 상반되는 몽상가인 동생을 무척 좋아하며, 나중에 페데리코가 좋은 일 좀 하다가 팔자에 없던 주먹다짐에 엮여 얻어터지고 돌아오자 "난 네가 부럽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라는 말도 할 줄 아는 멋진 형입니다. 페데리코 같은 애는 영락없는 문과 기질이라 수학에 서투르지만 형은 못 하는 과목이 없습니다. 이런 애가 좋아하는 영화의 한 대목을 <언터처블>에서 알 카포네가 정찬 자리에서 야구 배트로 누구 머리 깨는 장면이라고 했을 때는 왠지 안심도 되더군요. 괜한 동질감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이 대목까지만 해도 똑똑한 형제들의 고담준론(예를 들어 p89, p221의 옥시모론이 어쩌구 하는 모순어법 토론 등)이 이어져서 이렇게 중산층 젊은이들의 따스한 성장담이 이어지는가 보다 했는데 기어이 2부 이하에선 졸라풍의 지독한 자연주의 비극이 페이스를 냅다 높이며 독자까지 함께 지옥으로 몰고 가더군요. 1부에도 물론 돈 피노 신부가 위험한 일(마피아에 맞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참된 복지, 계몽, 교육 사업을 벌임) 할 때부터, 또 그 비행청소년과 아슬아슬 엮일 때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2부부터는 안전막이 싹 걷히고 저 <언터처블>에서처럼 무지막지한 깡패들이 바로 본색을 드러내며 "순교자"를 만듭니다. 보면서 독자가 참 격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열 받으니까 서평에는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p267에 보면 영화 <대부>에서뿐이 아니라 실제 코를레오네 패밀리(아마 짝퉁이겠죠?)가 등장해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양아리짓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역자 후기를 보면 실제 인물은 나중에 크게 뉘우치고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책 중간쯤에 나오는 "십자가 옆에 못 박힌 도적" 이야기가 과연 여기도 적용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돈 피노 신부 같은 성자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도서
저자 : 알레산드로 다베니아(Alessandro D’Avenia) / 이승수역
출판 : 소소의책 20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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