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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서평] 슬픈 옥수수 - 우리의 음식, 땅, 미래에 대한 위협 GMO

by 쓸쓰 2020.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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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옥수수슬픈 옥수수 우리의 음식, 땅, 미래에 대한 위협 GMO



슬픈 옥수수




한정된 경작 면적의 농지에다 투입하여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걔선할 수 있는 질소 비료가 발명되었을 때, 인류는 마침내 기아와 흉작의 근원적 위험에서 구제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유전자 조작(변형) 작물의 고안 역시 그 초기 단계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 일각의 구조적 빈곤 재생산 기제를 근절시키는 데에 이보다 더 획기적인 성과가 또 있겠냐는 식이었죠.



다만 우리 한국은 GMO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널리 형성되기 전부터 이미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같은 속도로 퍼졌다고 봐도 됩니다. GMO가 환영 받는 초기 단계가 있기나 했었냐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지요(GMO뿐 아니라 앞으로 일상에 새로 도입되는 모든 기술상의 발전 양태가, 이처럼 비판적 시선의 검증을 거칠 겁니다). 시민 대중의 경각심이 이처럼 마련된 현상이야 다행스러우나, 문제는 유익하고 필요한 일부 다른 응용 분야의 기술에까지 무작정 적대감을 유지해서는 또 곤란하다는 겁니다. 이성적으로 정직하게 납득,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가꿔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까요.


학교 다닐 때 쌀과 밀이 세계의 양대 작물이라고 배운 분들은,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교재에 새로 "옥수수"가 들어간 걸 알고 좀 놀랄 수도 있습니다. 가공식품 여러 종류에 옥수수가 원료로 대거 사용되기도 하며, 통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 증 노점 등에서 인기를 누리는 품목이 또한 이 곡물이죠. 미국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밀과 더불어 이 옥수수 재배가 농업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가뜩이나 성황을 이뤘던 산업적 경향이, 근래 들어 중국 등지로부터의 폭발적인 수요 증대라든가, 육고기 생산의 중간재(가축 사료)로 새로 주목받은 용도 때문에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 옥수수가 문제입니다. 책 제목을 보십시오, 왜 옥수수가 슬플까요? 무정물인 옥수수가 스스로 슬픔을 느낀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미 일상에서 필수 품목으로 곁에 끼고 살아가야 할 이 옥수수를 우리가 슬픔의 눈으로 바라봐야만 하게 되었다는 뜻인지... 답은 "둘 다" 입니다. 옥수수 없이도 익숙한 알상의 편의를 누리기는 더 이상 어렵게 된 현대인이, 죄 없고 순결했던 작물 하나에 몹쓸 짓을 해 놓은 일부 탐욕스러운 업자들 때문에 공연한 건강 걱정, 나아가 치명적인 장해, 질병까지를 얻게 되는 현실, 애꿎은 옥수수를 원망하게 되는 부조리, 이 모두를 담아낸 말이라 하겠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동작이 힘들어, 내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구나 하는 서글픈 각성과 고통이 정신을 휘감았다는  저자의 고백... 체념에 가까운 상태로 현실을 받아들이려 할 무렵 청천벽력 같은 진실을 알려 준 이는 패리스 맨스먼 박사였습니다. 케이틀린 셰털리는 출판사 편집인이었고, 순수 문예와 시사 이슈 사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글쓰기 활동을 이어간 인기 블로거, 작가였습니다. 이런 분이, 같은 메인(Maine) 주(州)에 사는 맨스먼 박사로부터 자신의 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듣게 된 후, 집요한 의지와 정의감을 발동하여 일부 양심을 팔아치운 기업의 부조리한 행태를 고발하고, 나아가 이런 무모한 시도가 사업 확장의 필수 구조 중 하나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이 위험한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까지 시선을 돌립니다.


일부 실화에 기반을 둔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에서 감동 받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의학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던 부모 두 분이, 어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온갖 정보를 파고들고 연구를 거듭하여 마침내 신약 개발에 큰 몫을 보태기까지 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인체에 어떤 난치의 질병이 우연의 개입으로 발생하는 건 그저 자연의 무정한 처사려니 체념할 수도 있지만, 타인과 시민의 건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기업의 썩은 행태가, 건강한 내 몸을 좀먹고 망칠 수도 있었다니 얼마나 충격적이고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진실이겠습니까. 이는 케이틀린 셰털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중 누구라도 당장 내일부터 빠져들 수 있는 억울한 곤경이며 코 앞에 다가온 위협입니다.


옥수수가 임자를 만났다? 아뇨, 임자를 만난 건 일부 악덕 기업과, 이들의 범죄행위에 공범으로 끼어든 무책임한 정부 당국입니다. 사실 독자로서 저는, 어쩌면 이렇게 절묘한 우연으로, 글 솜씨 좋고 논리적 사고를 할 줄 알며 부당한 압력에 무기력하게 굴종하지 않는 의지까지를 지닌 저자에게, 이런 면역학상의 재난이 닥쳐서 우리 독자, 시민 모두가 GMO의 위험성에 대해 충격을 받게 되는 건지, 그 과정의 적시성(適時性)에 새삼 놀랐습니다. 허나 다시 생각해 보니, 놀랄 일도 전혀 아닙니다. 유병률이 낮고 발생 빈도가 떨어지는 특수 희귀 질환이 하필 저자 셰털리 여사를 덮친 게 아닙니다. 이 저자와 같은 과정을 거쳐 몸이 상하고, 아프면서도 그 이유를 모른 채 진통제나 투약하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정도로 위험한 기제가 우리의 일상을 감싼다면,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2세들이나 이 저자가 겪은 불행에서 피해가라는 법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옥수수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일찍부터 그 위험성이 지적되었는데도 "나는 괜찮겠지"하는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사실상 부도덕한 기업 행태와 무책임한 정부의 자세에 면죄부를 준 우리 모두가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 책에는 뜻밖에도 "사람 냄새 나는 사연과 이야기, 감동"이 충만합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빠르게 일별한 분이라면 혹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 아닐지 착각할 만도 하게, 기승전결과 감성이 묻어나는 문장과 튼튼한 서사가 가득합니다. 그저 고발의 사연이라면 분노와 각성과 불안으로 책을 덮고 말지도 몰랐으나,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는 훈훈한 공감, 연대의식까지를 함께 충전한다는 게 큰 차이입니다. 또, 고달팠던 추적과 투쟁 과정에서 오히려 진정한 인간애에까지 눈을 뜬 저자의 정신적 성숙이, 이 책 텍스트 곳곳에 성과로서 배어났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옥수수는 슬프지 않습니다.


슬픈 옥수수
국내도서
저자 : 케이틀린 셰털리(Caitlin Shetterly) / 김은영역
출판 : 풀빛 20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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