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한 끼
개인적으로 맛집 가는 것을 좋아한다. 팟캐스트도 맛집 관련된 것을 많이 듣고, 방송도 맛집이나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최근에 찾아보는 음식 관련 방송은 딱 두 개다. 하나는 ‘냉장고를 부탁해’이고, 다른 하나는 ‘수요 미식회’다. 올해 가장 뜨거운 음식 방송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 이전에는 ‘찾아라 맛있는 TV'를 좋아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신선한 구성이 힘을 잃었다. 최근에 보는 방송들도 약간 그런 기미가 보이지만 단순히 맛집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음식 재료나 관련 지식을 같이 보여주면서 그 재미를 아직은 유지하고 있다. 사실 맛집에 대한 정보가 지금처럼 활성화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전에도 맛있는 집에 대한 책이나 정보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블로그가 일상화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어딘가 놀러 갈 때면 자연스럽게 맛집을 검색하고 그중 한 곳을 갈 정도다.
이에 대한 부작용도 적지 않아 ‘블로거지’란 단어까지 나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꼭 맛있는 집에 대한 소개가 나왔다. 방송국에서 소개한 맛집이 전국 어디에나 가도 있다. 오히려 방송에 나오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광고하는 집까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 나오면 눈길이 간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모두 여섯 장으로 나누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기 좋은 맛집,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한 힐링 맛집, 부담 없이 즐기는 골목 맛집, 혼자라도 괜찮은 맛집, 미팅하기 좋은 맛집, 가족과 함께 하기 좋은 맛집 등의 47곳이다. 이 중에서 가본 곳을 세워보니 딱 세 곳이다. 아야진 생태찌개, 광화문 집, 중국 등이다. 중국은 딱 한 번 갔고, 다른 곳은 몇 번 다녀왔다. 아야진 생태찌개를 제외하면 다른 맛집 소개 방송을 듣고 찾아간 곳이다. 모두 만족했다. 다만 자주 갈 수 있는 곳들이 아니다 보니 그쪽으로 갈 일이 있으면 한 번 더 맛보고 싶다. 그럼 나머지 44곳은 어떨까?
낯선 이름도 몇 있지만 꽤 많은 수의 식당들이 낯익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보고 듣고 한 것 때문일 것이다. 주영욱이란 이름이 낯익으면서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운영하는 여행사 이름을 듣고 팟캐스트에 등장했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들은 방송은 ‘탁PD의 여행 수다’란 팟캐스트다. 이 방송에서 소개한 식당 몇 곳이 이 책에도 나온다. 방송을 듣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에 적힌 가격을 본 후 주저하게 되었다. 일 인분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자주 가는 것이 아니니 이 정도 가격을 지불할 수 있지 않나 하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맛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의 정보만 가지고 가기에 주저하게 된다. 비싸고 맛없는 식당의 경험이 몇 번 있다 보니 더욱 그렇다. 2012년부터 ‘중앙선데이’란 매체에 연재한 것을 추려서 책으로 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실린 것을 감안하면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식당들이 나왔을 텐데 그중에서 뽑았다는 것은 나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의 경험이 주는 신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음식은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탄다. 그의 입맛과 나의 입맛이 꼭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괜한 트집일까? 아마 이 책에 나온 식당들을 간다면 대부분 만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가보고 싶다는 식당을 그렇게 많지 않다. 왜일까? 아마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방식이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또 자신의 감각이 기본이지만 식당 주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모습이 하나의 광고처럼 다가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문 연재 칼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친절했을 것이고. 물론 그가 자주 가는 식당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이 식당들 모두가 그가 자주 가는 식당들이라고 한다면 나의 이 트집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나의 이전 경험과 상관없이 말이다. 맛집에 대해 관심이 있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 같다.
골든 애플(블랙 앤 화이트 67)
조금은 혼란스러운 소설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흥미롭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으로 오면서 뭐지? 하는 혼란이 찾아왔다. 아마도 나의 이해를 벗어나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덟 편의 에피소드가 각각 독립된 이야기지만 이어져 있다. 감응 정신병이란 소재들을 각 에피소드에 녹여내었고, 그 과정에서 시점의 변화와 정체성의 혼란이 만들어낸 부분을 나의 상상력이 엉뚱한 곳으로 발전시켰다. 반복되는 키워드를 머릿속에서 쥐고 있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 오해와 혼란을 더 부채질했다. 여덟 개의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제목들은 에로토 마니아, 클레이머, 칼리굴라, 골든애플, 핫 리딩, 데자뷔, 갱 스토킹, 폴리 아 드 등이다. 여기서 폴리 아 드가 감응 정신병 혹은 2인 정신증이라고 말한다.
제목인 골든애플은 도시전설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탄산음료의 이름이다. 이처럼 낯선 이름도 있지만 칼리굴라, 핫 리딩, 데자뷔처럼 낯익은 이름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감정과 정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현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 들 중 하나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상황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지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단지 그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이다. 소설가인 하루나 미사키, 개그맨이었던 가와카미 고이치, 파견직원인 마이코 등이 반복되는 인물이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잡지와 소설이 있다. <프렌지>라는 패션잡지와 그곳에 연재되는 하루나 미사키의 소설 <당신의 사랑에게>이다. 특히 이 패션잡지와 연재소설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매혹시킨다. 그런데 이 소설이 작가 하루나 미사키와 고이치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것이란 말이 있다. 현실과 소설이 뒤섞인다. 감정이 이입되고, 정신은 그 감정에 매몰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에로토 마니아>가 바로 여기서 생긴 사건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뭐지? 반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고이치가 일했던 백화점 식품 매장인 멘치카쓰의 점장은 고이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있다. 그는 소심한 사람이다. 본사 근무를 꿈꾸고 있는데 백화점 고객 중 한 명이 먹던 음식에서 손가락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방송에 이 매장이 찍혔다. 나중에 이것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는 계기가 된다. 백화점에서는 그 고객이 클레이머란 이유로 역공한다. 그 이유가 일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이 소심한 한 점장에게는 아주 강렬한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그것은 그의 손가락에 붙어 있던 반창고의 분실이다. 다른 클레이머가 나타나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발전한다. 놀라운 것은 이 사건 이후 대처 방식이다. 이것은 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나온다. 이렇게 이야기는 또 다른 모습의 감응 정신병으로 변해서 이어진다. 현대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상황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여자라고 생각하게 만든 후 반전이 펼쳐지고, 작은 착각이 강한 집착으로 변하면서 헛소문을 만들어내고, 진실의 한 조각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 뚝 튀어나온다. 과거의 한 사건은 진실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처리하지만 이것이 다른 에피소드에 연결되면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헛소문으로 감옥에 간 여자가 만난 사람이 과연 그녀가 맞는지 의문이 생기고, 그 좁은 감옥 안에서 만들어내는 환상과 망상은 그 정도를 넘어간다. 마지막 장에 가서는 앞에 나온 이야기들이 하나로 엮이는데 그 결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려나온다. 가볍게 읽기는 좀 그렇지만 표지의 그림처럼 엮이고 꼬인 관계를 잘 표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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