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백성현, 누구지? 하지만 코요테의 래퍼 빽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TV에 자주 나왔던 그를 래퍼로 기억하던 나에게 사진가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보다 먼저 그가 앓고 있던 병이 떠오른다. 뇌종양이다. 이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병에 무지한 나는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이나 드라마 등에서 뇌종양에 걸린 사람들은 다 죽었기 때문이다. 수술이 잘 되어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병이 과장되게 보도된 것인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미안해졌다. 나의 섣부른 추측과 오해들 때문이다. 포토 에세이란 표제처럼 참 많은 사진들이 나온다. 좋아 보인다. 사진에 대해 잘 모르니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가 카메라를 통해 본 사물은 빛과 그림자와 각도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사진은 더 좁은 곳에, 어떤 사진은 더 넓은 곳을 찍어서 나의 상상력을 넓혀준다. 이런 사진들을 볼 때면 나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지만 현실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은 아직도 비루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가 누른 셔터의 숫자와 비교하면 만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사진에 들인 노력과 공부를 생각하면 더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빽가가 아닌 백성현을 보게 되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프니까, 사랑하니까, 그대로 내 인생이니까, 이렇게 세 부분이다. 아프니까는 제목 그대로 그가 열심히 활동하다 뇌종양을 발견하게 된 과정과 그때 느낀 감정과 사실들은 기록한 것이다. 진솔한 감정을 담은 글은 연예인이 아닌 한 명의 환자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 만나게 되는 기레기들의 반응을 보고 분노했다.
악플이란 글에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댓글이 소개되는데 이것이 단순히 악플인지 아니면 댓글을 단 사람이 착각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댓글은 그를 아주 힘들게 만들었다. 병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평소에 신경을 그렇게 쓰지 않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자신이 놓치고 있던 감정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에게 가족이다. 바쁜 연예계 생활에서 잘 찾아가지 못했던 부모님과 어릴 때 기억을 들려줄 때 순간 뭉클함을 느꼈다. 성공한 연예인 빽가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양념치킨에 얽힌 사연은 더욱 뭉클하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으면 지금까지 그 영향을 미칠까 하고. 성공한 빽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닭이란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사진이 있다. 사진작가 백성현. 아직도 낯선 이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친숙해지고 있지만 빽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어릴 때부터 찍어온 그의 이력은 놀랍고, 라이카의 아시아 최초 모델이란 사실은 더욱 놀랍다. 아직도 필름 카메라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고루해보이지만 필름 카메라만의 색감이나 질감 등을 생각하면 조금은 동의한다. 어떤 사진작가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뭐 특별하게 이상하지도 않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말하면서 찍은 사진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일 때 초점이 흐린 사진을 이해하게 되었고, 어떤 사진은 가슴 한 곳에 푹 박혔다.
그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한다. 바다 사진을 많이 찍는다. 어떻게 보면 별로 볼 것 없는 사진인데 여기에 이야기가 덧붙여지니 여기저기 유심하게 더 쳐다본다. 노부부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다. photoby란 이름으로 활동한 그가 사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무료로 교육하고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실습을 했다는 글을 읽으면서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이전처럼 코요테가 인기 많은 것도 아니고, 그의 말처럼 유명 연예인의 기부를 따라 갈 정도는 아니지만 열정 가득한 사진가 지망생들에게 그는 아주 좋은 선배이자 선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그가 함께 사진 찍을래요 라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 ‘예’라고 외쳤다. 나만의 좋은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싶기 때문이다.
100도씨
87년 6월 민주항쟁은 나에게 텔레비전을 통해 본 데모들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통해 나왔던 시위대의 모습은 그 당시 학생이었던 나의 이해력을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나중에 대학교에 가서 선배들의 무용담과 성과를 들었지만 한쪽 귀를 흘려버렸다. 그 이후 감탄하고 칭찬하기 보다는 그들이 실제 나가서 한 행동들 때문에 더 분노하게 되었다. 분명히 그들이 이루었던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는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역사 속에서 딱 반 걸음 앞으로 더 나갔을 뿐이다. 거대한 한 걸음이 아니고 반 걸음인 것은 그들이 현재의 기득권으로 변해 새로운 수구세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서 공감했다. 대학 시험을 친 후 나는 박정희를 옹호했다.
그 당시 누가 박정희를 욕하는가!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학교와 주변 어른들에 의해 세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짓된 정보를 씻어내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깊숙이 박혀 있었고, 또 다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많은 의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무협과 소설을 좋아하던 평범한 학생이 이 거대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언론을 통해 얻은 정보와 지식은 나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이십대 초반은 아주 우울하고 암울했다. 물은 100℃에서 끓는다. 이 책의 저자는 87년 당시의 분위기를 끓기 바로 직전인 99도라고 말한다. 아마도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기에 이런 표현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일어났던 몇 가지 큰 사건들(박종철 고문사건, 이한열 열사 사건 등)은 대학생들에 한정되어 있던 시위대를 시민전체로 번지게 만들었다. 소위 말하는 넥타이부대까지 여기에 끼어들었다고 한다. 이 만화 속에서 몇 컷은 이것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시위대에서 물과 음식을 제공했고, 밤늦도록 시위가 끊어지지 않았다.
도시는 최루탄으로 가득했다. 나의 대학 시절도 학교 앞에서 가장 익숙했던 냄새는 바로 최루탄이었다. 이렇게 물이 100도에 끓기 위해서 뒤에서 앞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청춘의 열정에 의해 가담한 대학생들도 있겠지만 그 당시는 정말 순수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은 대학교에서 가두시위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 몇 년 전 광우병 사태가 있었을 촛불시위도 대학생들이 가두시위를 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교 총학생회는 사회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취업에 집중했다. 유일한 시위가 등록금 투쟁 정도다. 이제 대학은 더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 되었다. 새롭게 입사하는 직원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 단 한 번도 시위를 해본 적이 없다. 그 당시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던 나보다도 더 심한 상태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나조차도 그 시대의 영광을 누리면서 남이 나서서 대신 해주길 바란다. 목소리를 높여 정부와 여당을 욕하지만 투표를 제외하면 그 어떤 행동이 없다. 온라인에 수많은 성토가 올라오지만 딱 거기뿐이다. 광우병 당시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느낀 나의 환상이 시간의 흐름 속에 깨어지고 있다. 다시 끓기 위한 준비 단계로써 99도 정도까지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만화는 87년 민주항쟁의 성공에서 끝난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그 지점에서. 그 후 한국 문학의 한 장르는 이 후일담을 수없이 되새겼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지위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더 정밀한 방식으로, 더 악랄한 방법으로 이런 기세를 꺽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는 끓어야 한다고 하지만 소시민적 이기주의는 나와 우리가 우선이란 생각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준다. 학창시절 신문 사설을 읽고 기사를 보면서 공부하라고 한 것들이 이제는 오히려 독이 되는 세상이다. 그 당시 시위로 인해 감옥까지 갔다온 선배가 지금 대기업에서 하는 일을 보면 이 만화의 한 장면이 바로 그것을 대변한다. 반공 소년 영호가 데모꾼이 되고, 그 엄마까지 민가협에서 활동해야만 했던 시절을 그렇게 무겁지 않게 그려내었다. 부모의 대사는 낯익은 것이고, 청년들의 열정은 가슴 한 곳에서 잊고 있던 감정을 일깨운다. 읽으면서 잠시 추억에 빠지고, 다시 끓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부록의 만화는 아주 유익했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다시 역사가 100도의 끓기를 증명해주기를 바란다. 엉터리 보수들의 교묘하고 지속적이면서 거짓으로 가득한 여론과 정보 조작을 깨트리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의 후손들이 헬조선에서 더 이상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쩌면 지금 어딘가에서 99도 정도까지 끓어올랐는지도 모른다.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색 고전 동양편(Modern&Classic), 가토의 검(소설New 3) (0) | 2021.11.12 |
---|---|
시드니, 레드 스패로우1(버티고 시리즈) (0) | 2021.11.11 |
맛있는 한 끼, 골든 애플(블랙 앤 화이트 67) (0) | 2021.11.11 |
하우스 오브 카드 2, 시도니아의 기사 7 (0) | 2021.11.10 |
어둠의 양보, 레드 라이징(레드 라이징 3부작) (0) | 2021.1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