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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시드니, 레드 스패로우1(버티고 시리즈)

by 쓸쓰 202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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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시드니

 

하루키가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올림픽을 3주 정도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취재기다. 재미난 것은 그가 올림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지사의 요청에 의해 시드니 특별취재원이 되어 올림픽 현장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가 바라보는 올림픽의 모습은 이미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거대한 산업이다. 필요하지 않는 경기가 늘어나고, 엄청난 금액의 광고비를 낸 업체들의 홍보장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에피소드 중 코카콜라와 펩시에 대한 것은 아주 작은 해프닝이지만 올림픽의 변질된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도 올림픽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막식이나 폐막식을 처음부터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니 개,폐막식을 잠시나마 본 적도 거의 없다. 각 나라의 대표들이 지루하게 입장하는 것을 몇 시간이나 볼 만큼 인내력도 없다.

 

하루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비싼 돈을 주고 들어간 개막식을 중간까지 보다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근처에 앉은 이탈리아 청년들의 열정은 이 거대한 축제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가 개막식과 폐막식에 대한 혹평을 날릴 때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인 것은 바로 나의 생각과 맞았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하루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달리기다. 그가 올림픽 종목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종목도 마라톤이다. 남녀 마라톤과 1만 미터 달리기에 대한 글들은 애정이 가득하게 묻어 있다. 문장의 리듬이나 힘이 다른 종목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전체 코스를 돌아보고 오르막과 내리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레이스를 보고,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포착해서 자세한 해설을 풀어놓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달린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철인3종 경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열정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 취재기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들이 바로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대한 기록이다. 특별취재원으로 왔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보고 갈 수 없다. 다른 경기도 봐야 한다. 대부분은 일본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보는데 한국과 대결이 있는 경우 눈이 번쩍 뜨인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력을 더듬고, 어떤 경기는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새롭게 한다. 그가 본 경기 중 재미난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마쓰자카가 등판한 모든 경기를 봤다는 것이다. 한국과의 마지막 경기는 지금도 구대성의 멋진 투구로 나의 뇌리 속에 남아 있다. 다른 경기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검색하다 이때가 이봉주 시대였는데 하루키의 글 속에 이름조차 없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세계가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올림픽 관람기였다면 승리와 패배에 초점을 맞추고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갈등과 해결의 실마리를 보게 되었다. 코알라와 상어에 대한 글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경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역시 그가 얼마나 올림픽이란 행사에 관심이 없는지 잘 보여준다.

 

나중에 후기에서 ‘다시 올림픽을 보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였다. 하지만 약 3주 동안의 경험을 즐거웠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미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지만 새로운 내용이 더 들어가고 이우일의 그림이 덧붙여졌다고 한다. 읽으면서 이 그림이 이우일일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표지를 벗기고 읽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간결하고 투박한 그림체가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왠지 제대로 그리다 만듯한 그림체인데 하루키의 문체와 어우러지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과 끝부분에서 남녀 마라토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는데 처음에는 이 둘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림픽 기록에서 그 이름을 찾지 못했고, 작가의 글 속에서 그들이 그때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에 전문취재원과의 차이가 너무 두드려져 승리의 기록만이 아닌 그 경기장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의 열정과 감정과 생각들을 조금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톡톡 뛰는 문장들과 함께 말이다.

 

레드 스패로우1(버티고 시리즈)

 

정통 스파이소설이다. 오랜만에 이런 스파이소설을 읽는다. 작가는 전직 CIA요원으로 33년간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이 경력은 소설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예상한 것보다 더디게 읽히기에 재미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읽는 재미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한참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세밀한 묘사와 상황에 대한 설명들이 나의 호흡을 흐트려 놓은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장소로 이동할 때 주변의 모습이나 상황들을 하나씩 그려내듯이 보여주는데 이것이 속도를 떨어트린다. 계단의 숫자, 상호들, 방향의 전환 등이 몰입할 때는 한 글자 한 글자 읽게 만든다. 이러니 당연히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러시아 두 진영의 첩보원들의 대결을 다루었다. 당연히 작가의 무게는 미국 쪽에 있다. CIA 요원 네이트와 러시아 정보기관 SVR 요원 도미니카가 남녀 주인공을 맡아서 이야기를 주로 끌고 나간다. 하지만 이들 뒤에는 양국의 정보요원들이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고 조정한다.

 

네이트는 러시아 정보조직 내부의 스파이 마블과 만나 정보를 빼내는 역할을 맡고 있고, 도미니카는 이 네이트를 유혹해서 내부 스파이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이 둘이 만나기 전에 이 두 사람의 가족사와 그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도미니카가 받은 교육은 흔히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이다. 바로 스패로우 교육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도미니카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정보요원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고,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다. 그 특별한 능력은 사람의 감정 등을 색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엄마에게 물려받은 성격으로 순간 폭발하는 잘못을 범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조절된다면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다행이라면 그녀가 자랄 때 부모들이 이 능력을 숨겨주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이 능력은 그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전에 포사이스나 다른 스파이소설 거장들의 작품을 읽을 때 느낀 긴장감이 다시 돌아왔다. 아직 그 감각이 완전히 살아나지 않아 그 재미를 완전히 누리지 못했지만 조직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어느 순간 위험이 닥쳐올지 등의 다양한 느낌을 누릴 수 있었다. 내부 스파이를 관리하는 일의 어려움과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작전이나 노력 등은 읽는 내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었다. 그 중 하나가 도미나카와 네이트가 만나고, 서로가 우정을 쌓고, 자신들의 숨겨진 감정을 속이는 등의 행동을 할 때 잘 드러난다. 서로 자신의 패를 숨긴 채 속이는 작업을 펼치는데 네이트에게는 아주 좋은 동료가 있다. 바로 마커스와 자나 부부다. 이 노부부는 오랫동안 헬싱키에 살았고, 주변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누구도 그들이 미행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인물들이 또 등장하는데 바로 오리온 팀이다. 모두 베테랑으로 젊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강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고,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행한다.

 

물론 러시아의 정보요원이 빈번하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패턴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속고 속이고 미행하고 따돌리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높이는데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영화 등에서 본 것과 달리 아주 현실적이고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도미니카와 네이트가 한쌍의 커플이 되어 전체 국면을 이끌어나간다면 이들 뒤에서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상대측을 속이는 수단을 펼치는 것은 두 정보조직의 수장이자 전문가들이다. 기본적인 내용은 러시아 내부 스파이 마블을 찾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대결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과 시대의 이면에 대한 모습들을 다룬다. CIA가 러시아 내부 스파이를 심어놓은 것처럼 러시아도 미국 내부에 스파이를 심어놓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결의 결과는 당연히 미국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가 결코 깔끔하지는 않다. 배신과 배신이 중첩되고,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모습 등은 그 결말을 섣부르게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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