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 - 수리 논술, 대수·조합·논리·기하
놀랍게도 이 책의 서문은 미국의 유명한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글입니다. 이 책의 원서가 2000년 첫 발간된 것을 감안해보면 아이작 아시모프가 친애하는 동료 마틴 가드너를 위해 이미 썼던 글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1992년 타계하였으므로) 그는 서문에서 25년 동안 "수학 게임" 칼럼을 연재한 마틴 가드너의 번쩍이는 재치와 수학에 관한 지식 그리고 열정을 아낌없이 칭찬합니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수학자들의 궁금증과 열정에 관하여도 이야기합니다. 하나의 수학적 문제와 가설을 제기하기 위하여 소설의 영역까지 침범한 가드너의 책은 감탄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 이런 것들도 수학적으로 풀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넘어 수학이라는 어렵고도 기이한 학문을 이처럼 유쾌하게 풀어낸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기 때문인데요, 아직 수학에서는 어린아이들 만큼이나 초보적인 저 자신의 능력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답니다. 뭔가 그가 낸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보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쾌거를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그저 역부족이더군요. 이 책은 아니고 다른 책에서 읽은 말이지만, 우주의 생성과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수학을 알아야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마틴 가드너의 책에는 그 소 갯말로 이런 멋진 표현이 있더라고요. "마틴 가드너의 책은 수많은 천진한 어린이들을 수학의 세계로 이끌었고, 수많은 수학 교수들을 천진난만한 어린이로 만들었다."
큰 관점에서 보면, 수학 역시 거대한 놀이임에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레고도, 지능이 뛰어난 아기가 아무래도 활용도를 높여서 잘 가지고 놀듯, 수학 역시 그걸 갖고 노는 사람의 지적 수준에 따라 편차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실용의 영역과는 관계없는 차원에서 효용을 발휘하기 시작한 거니까요. 물론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아르키메데스 같은 이는 볼록 거울을 이용해서 적인 로마군을 퇴치하는 전쟁의 기술로 수학을 응용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거야 천재의 아주 예외적인 경우겠죠. 이 책에 보면, 고서점에서 옛 잡지(<어메이징 스토리>라는 제호인데, 물론 가상의 잡지일 것입니다)를 사려는 어느 신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16장, pp199-122). 서점 주인의 흥정은 이랬다고 합니다. "가장 최신호는 1달러, 그다음으로 최근 것은 3달러, 이런 식으로 2달러씩 늘려 가면...."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이 장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문제를 푸는 결정적 힌트는, "한 책에만 당신(와이프) 나이의 5배를 지불했어."라는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얼핏 들어 별 말이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그 말은, 두 그룹으로 나뉜 책들 중에, 그 가격에 해당하는 책은 어느 한 그룹에만 들어 있다는 뜻이잖아요? 각 그룹은 최대한 같은 권수를 가져야 하므로, 만약 총 구입 권수가 짝수라면, 이 가격은 이 그룹이나 저 그룹 모두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단 한 권'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총 구입 권수는 홀수라는 말이죠. 이를 결정적 힌트로 해서 이 퍼즐은 풀려 나가게 됩니다. 또, 서점 주인 노인은 왜 두 번째 제안을 하면서 그리 큰 인심이나 쓰는 투로 말을 했을까요? 만약 첫 번째 제안대로라면, 등차수열의 합은 책이 n권일 경우, n의 제곱이 됩니다(이 책 p122 위에서 셋째 줄). 그러나 두 번째 제안대로라면(책에는 좀 시원한 설명이 안 나와 있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일반식이 나옵니다. 그래서, 첫째 제안보다 절반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결과입니다. 이 정도면 매도자가 스스로 가격을 반으로 후려 치는 거니 인심을 쓰는 척도 할 만하죠. 다만 마지막에 단서로 단, "100의 배수는 되어야 해."가 함정이지만요. 그런데, 과연 이런 시시한 문제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이미 편입된 어른이 어디 가서 진지한 화제로 내세울 수 있을까요?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간, 영 모자란 사람 취급당하기나 쉽습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화를 꼭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오늘 소개할 "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는 이런 학문의 유쾌한 즐거움을 빼놓고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단지 책상 앞에서 그저 머리만 쓰고 있는 학문을 바라보면서 "저런 탁상공론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몰두할까" 궁금해하곤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학이나 범죄 해결을 도와주는 법의학이면 모르지만, 가끔 "도대체 누가 그런 게 궁금하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주제를 평생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나마 대학시절 학사 논문을 집필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가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라면 다행이지만, 평생 무언가를 "연구"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어마어마한 연구지원비를 받아가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심하게까지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에 집착하여 몰두하는 사람을 조금 비꼬아 너드(nerd)라고 부르곤 합니다만, 남들이 비웃는 너드로 남느냐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혁신자가 되느냐는 정말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곁을 떠났어도 오래도록 우리 마음에 남을 스티브 잡스가 그렇고 그야말로 "한심한 청년" 취급받던 월트 디즈니도 성공하기 전에는 모두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저 주변 사람들이 "멋지다"라고 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명문대에 진학하여 대기업에 입사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을 가지게 될까요?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빈번하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너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일할 때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시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연구 혹은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흔한 예로 열두 시간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가라오케에서 새벽까지 열창하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노래하고 공연하는 것, 혹은 연습하고 준비하는 것을 "일"로 생각했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퇴근 없이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이 될 테니까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생각할 수 있고,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틴 가드너 또한 그런 수학 "너드"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하나의 공상과학소설을 연상시키는 쳅터 별 발단과 전개 그리고 해결입니다. 각 챕터에서 우리는 은하계 (혹은 우주)를 자유롭게 누비며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때로는 세 개의 우표만으로 원하는 모든 수를 얻을 수 있는 위험하지 않은(?) 문제에서부터 (물론 이 경우에도 배경은 미국이나 지구가 아니라 무려 우주 식민지입니다!) 탐험 중 실종된 탐사대의 생사가 걸린 급박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희 수학'이나 '수학 게임'이라는 것을 약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유희'나 '게임'일까? 관점에 따라 이것들은 전혀 가치 없는 바보짓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수학자들은 이런 것에 항상 궁금증을 가진다. 모든 수학의 출발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은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서문 중, 6 페이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글씨체 (폰트)에서 스티브 잡스는 맥킨토시의 미래를 발견했고, 더러움과 전염병의 상징이었던 쥐는 월트 디즈니의 손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의 가장 친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작만 두고 보자면 정말 "쓸데없는" 일들이었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인정하고 놀랄만한 것이 되었고요.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수능을 위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학생들이라면 "이게 뭐야"라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수학 공식과 그 비밀을 알아내는데도 부족한 시간인데 갑자기 행성이니 지그 박사니 베이글 호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황극을 시작하나 답답해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수학이 궁금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제가 깨달은 사실은 이렇습니다. 그저 머리가 좋아야 하고 이해력이 빨라야 하는 학문이라고 여겼던 수학은 (아직 범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논리이며, 문법이고, 어느 무엇보다 호기심 가득한 발견인 것 같습니다. 마틴 가드너 역시 명망 높은 수학자였지만 그가 가진 호기심은 마치 어린아이의 것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가 유명한, 인정받는 수학자였다는 배경이 없었다면 그의 이런 유희들은 "실없는" 것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글을 쓰던 그가 실제로 어떤 기분이었을지 더이상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확실히 "일을 해야 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써 내려가는 작은 공상과학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과 한마음이 되어 그들이 처한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흥미진진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문제를 결국 해결했을 때 그가 느꼈을 유쾌한 즐거움과 흥분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배우고 연구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던 책입니다. 오묘한 학문인 수학을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과 시선에 유쾌해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인용한 소갯말의 그 표현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수학은 원칙적으로 어린이의 천진한 마음으로라야 그 진정한 접근이 가능한 놀이이다." 다 시 토픽으로 돌아가서요, 이 16장에서 다루는 문제라면 우리 한국에서는, 보통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배우는 등차수열과 같습니다. 가상의 주인공은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라고 하지만, 사실 등차수열의 합은 그렇게 감당 못할 정도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무서운 건 등비수열이죠. 이 책 21장(p153)이 다루는 토픽이 바로 그 등비수열입니다.
21장의 화제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바이러스라는 게 알고 보면 정보의 배열에 불과하다는 일본 과학자들의 가설을 퍼즐화하여 소개하고 있네요. 그 가설은 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났지만,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되겠죠. 왜 외계인들이, 번거롭게도 (우리 지구인이 하는 방식처럼) 전산 부호의 전송이 아닌, 바이러스의 형태로 정보의 매개체를 삼았을까요? 그 이유는 생명체(바이러스를 생명으로 본다면)의 무서운 증식 속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단계에서 아무리 적은 레벨에 머무르는 숫자라도,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일정 배수가 곱해짐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그 수는 어느 순간에는 감당 못 할 만큼 거대한 수치가 된다는 건 고등학교 수준의 등비수열 원리만 배워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은 이 당연한 사실을 잘 응용해서, 흥미로운 문제로 가공하고 있습니다. 마틴 가드너의 이름에 확 끌려서 이 책의 구입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아마 그 생각이 들 겁니다. "과거에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지금도 시중에서 팔고 있습니다) 그 두 권과 혹시 내용이 겹치는 건 아닌가?" 조금 실망스러운 건, 그런 부분이 꽤 있다는 거고, 그것도 책의 첫 장 첫 토픽이 바로 예전 그 책들에서 본 문제라는 거죠. 그런데, 총 33개 장 중 그 두 권의 내용과 겹치는 건 11개 정도고, 그 내용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그 책들은 일반 원리의 설명이 많았다면(그리고 매혹적인 일러스트가 있었죠), 이 책은 보다 문제 위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 책들의 분위기가 좀 더 유럽적이었다면, 이 책은 유머 코드까지 포함해서 다분히 미국적입니다. 무엇보다, 비교적 최근의 성과를 반영한 원리와 주제가 많이 반영되어,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 책들>의 속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몇 군데 깔끔하지 못한 번역이 흠이지만,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어른들에게 아주 제격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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