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이야기
캔터베리 이야기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다는 말이 있죠. 많은 이들이 여기까지는 동의하시겠지만, 이 격언의 주어에 "이야기책" 하나를 포함시키면 어떤 반응들일까요? 전 개인적으로 포도주와 친구보다 더 앞선 서열에 고전 소설을 놓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바로 이 책 <캔터베리 이야기> 같은 책 말입니다.
이 예쁜 책 맨 뒤 역자 서문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순간적인 대작'들의 맹공을 받고 있다...." 과연 그렇습니다. 맹렬히 회전하여 "본전"을 뽑아내지 않으면 호된 운명을 맞는 자본의 논리가 이를 강요하기에, 작가나 작가를 빙자한 간교한 장사꾼들도 자신의 작품을 실제 가치 이상으로 뻥튀기하여 대중의 관심을 못 끌면 바로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우리들 소비자(독자) 역시 그런 상업화한 대작에 이끌려 세뇌된, 부정직한 소비를 강요당하기 일쑤고, 유행 상품을 맛본 감상을 유쾌하고 유창하게 털어놓지 않으면 친교나 생업에서 소외되기 십상입니다. 어쩌면 초서.... 까지 거슬러올라가진 않아도, 셰익스피어, 라신, 샤토브리앙, 뒤마, 괴테의 시대에도 "순간적인 대작"들이 시장에 나와 대중의 눈을 현혹시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의 시련을 견뎌내고 장구한 시간이 흐르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그런 사이비 대작들이 한 줌 먼지와 곰팡이 사료로 변했을 때 의연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고전"의 명예를 지킵니다.
역자 서문에도 나오지만 제프리 초서의 이 <캔터베리 이야기>는 머나먼 이탈리아의 문필가 보카치오의 작품 <데카메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 뚜렷하죠. 재미나게도, 엄청 많은 사람들, 기사, 하급 기사, 종자, 수사, 탁발 수사, 상인, 서생, 변호사, 의사, 소지주, 선장, 본당 신부, 방앗간 주인, 면죄사, 여관 주인, 소환리, 장원 청지기, 식료품 조달인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이들이 여관에 함께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는 형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형식만 놓고 봤을 때도 두 작품은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이런 주변 액자 파트에서는 조금 재미와 다채로움이 떨어지지만, <캔터베리 이야기>는 화자들이 자신과 상대방의 이야기에 간혹 끼어들어 품평을 하기도 하며, 특정 직업을 가진 상대와 시비가 붙기라도 하면 그런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망신을 당한다든가 우스운 꼴이 되는 이야기를 곧바로 들려주는 식으로 받아치는 등 프레임 밖도 더 활성화된 모습이죠. 이후 세월이 많이 지나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보면 "들려지는 이야기들"보다 액자(이미 액자가 아닙니다만)가 무대의 중심에 부각되는 근대성이 드러나는데, 이 점에서도 <캔터베리...>가 <데카메론>보다 더 발전된 픽션이라고 하겠습니다.
초서는 어쩌면 10장 마지막 고별사 파트를 통해, 이 흥미진진한 픽션의 세계에 (캐릭터로까지는 아니겠으나) 작가 신분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고별사는 아직 출판의 자유가 채 확립 안 되었을 무렵 검열 당국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저작 명의로 된 책을 펴내어야만 했던 고충을 반영한 "작품 외적 정보"에 가깝지만, 이상하게도 순수 자신의 창작임을 자랑하기보다는 그 역시 소중히 전해 들은 장구한 스토리를 다만 자신이 가다듬어 세상에 내어놓는다는 투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다면 미처 드러나지 않은 여관 손님 중 한 명으로 그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는 거죠. 역주 중에도, 예를 들어 p383 같은 곳을 보면 형식은 "선장의 이야기"이지만 본문은 "우리들 여자들은... " 처럼 이상한 주어가 끼어들죠. 역자께서는 이런 걸 두고 "... 원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없던 내용을, 작가 초서가 임의로 삽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독자들에게 귀띔합니다. 혹은 본디 "베스의 여인"이 화자였던 걸, 편집 과정에서 순서가 뒤바뀌어 엉뚱한 자리를 잘못 찾았을 수도 있고요.
등장 인물 중에는 공부에만 전념하느라 영양을 충분히 보충 못 하고, 육체 노동에는 한 번도 종사 못 해 비쩍 말라비틀어진(책 중 표현입니다) 옥스포드 서생도 등장합니다. <데카메론> 등과 달리 이 책에서는 이런 대학생이 액자에서건 구수한 사연 속에서건 중요 인물로 자주 등장하는데요. 사실 혈기 넘치는 나이에 배운 건 배운 대로 많고 재기도 발랄할 이런 신분이 펼쳐 보이는 이야기가 꽤 재미있으리라는 기대는 당연히 우리 독자 입장에서 가질 만하지 않겠습니까? 욕심 많은 식료품 조달자나 농부 등과, 이들 학생들이 지역 사회에서 충돌하는 광경은 꽤 우습고 유쾌하며, 지성인을 지향하지만 아직도 품성과 가치관이 미진한 이들 젊은이가 젊은 처녀들(혹은 유부녀들)과 눈이 맞아 벌이는 소동은 독자들이 쫓아가기에 아슬아슬하면서도 스릴이 넘칩니다.
변호사가 들려 주는 이야기 중 로마(비잔티움을 뜻합니다. 아직 메메드 2세의 손에 멸망하기 훨씬 전이니까요) 황제의 고명딸 콘스탄스 공주의 이야기가 있죠. 고귀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장난 때문에 온갖 고난을 다 겪지만 이를 헤쳐나가며 마침내 행복을 찾는 위대한 여성의 사연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데카메론> 이틀째의 일곱 번째 이야기(판필로가 들려 주는)에 나오는 알라티엘(Alatiel)이 생각 났습니다. <데카메론>과 이 <캔터베리 이야기>가 결정적으로 차이 나는 대목이 바로 이런 곳들입니다. 데카메론은 이상하게도 착한 여성들이 (그녀들의 의사에 반해) 일찍 순결도 잃고 여러 남자 품을 거치며(뭐 어쩌겠습니까....)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반면, 이 <캔터베리 이야기>는 더 많은 우연과 행운의 개입으로 이 연약한 귀공녀들의 신변과 안전이 많이 배려된다는 게 차이입니다.
<데카메론>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등장 인물들은 너무도 타락하고 방종하거나 극악무도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반면 <캔터베리 이야기>는 짖궂고 심술맞을망정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개구쟁이 같은 캐릭터들이 더 많은 편입니다. 결말도 대체로는 독자 안심하라고 더 온화하게 마무리되기도 하고요. <데카메론>의 별칭이 "human comedy"이듯 원래는 기분 좋게 끝이 나야 하는데 읽어 보면 그게 아니죠. 반면 <캔터베리 이야기>는 우여곡절이 많고 분량도 고른 길이이면서도 엔딩은 훈훈합니다. 읽고 나서 기분이 정화되고 유쾌해집니다. 이런 형식과 주제가, 진정한 낙천성과 인간 정신에 대한 긍정이 아닐지요. 또 르네상스를 예비하는 참된 인문주의의 정수이기도 하고요.
인문주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시시콜콜한 지식이나 당대 과학(어설픈 단계지만)에 대한 강의식 언급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그저 재미만 추구해서는 안 되며, 청자 혹은 독자에게 교양도 가능하면 전수해야 한다고 여긴 출판업자나 작가들의 당대 의식 단면을 엿보는 듯합니다. 이런 태도는 리처드 F 버턴(역시 영국인입니다. 한참 후대이지만)이 정리한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도 우리가 만난 적 있죠. <아라비안 나이트>와 또 닮은 점이라면, 종교 교의가 (당대 독자 아무도 듣길 원하지 않았을ㅎㅎ) 어느 구석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장황하게 설파된다는 점입니다. 이 책이라면 본당 신부 이야기 파트가 그렇죠. 반면 탁발 수사나 면죄사 이야기는 정반대로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는데, 이는 초서 자신의 풍자 정신이 은근 스며든 설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데카메론>에서 보카치오는 그런 삼가는 기색이 전혀 없고 수사, 신부, 수녀 가리지 않고 저속한 음담의 소재로 비참하게 추락시키는 노골적 성격을 대담하게도 보입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데카메론>보다 공간적 배경이 훨씬 넓고 소재도 다양합니다. 특히 두드러지는 건 그리스- 로마 신화나 아서 왕 주변의 기사들을 연상시키는 모티브가 많이 소개된다는 점입니다. 첫째 장 아르시테와 팔라몬의 이야기가 특히 그렇죠. 기사가 들려주는 이 사연은 아예 아테네의 테세우스 왕이 주요 인물 중 하나입니다. 두 젊은이는 테베 출신인데, 영국 기준으로는 아찔할 만큼 멀리 떨어진 극남의 고장이며 , 그리스는 아일랜드(브리튼 섬의 바로 이웃)를 "히베르니아", 즉 극북의 변경으로 불렀을 만큼 두 나라는 서로를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초서보다 이백여 년 후에 활동한 세익스피어가 (자신은 한 번도 못 가봤을) 덴마크나 스페인, 이탈리아 곳곳을 자유롭게 작품 무대로 활용했듯, 초서 역시 그리스 신화를 작품 속에다 우아하게도 편입합니다.
앞서도 잠시 말했지만 <데카메론>에서 여성들이 그저 음담패설의 양념처럼 노리개로 취급되는 것과 달리,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는 더 밝고 주체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토머스 불핀치의 <The Age of Chivalry>를 보면 2부 가웨인 경의 모험담(결혼 골인 성공기?)에 그런 대목이 있습니다. "여성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가?" 이걸 알아맞혀야 가웨인 경은 아내를 얻을 수 있는데, 답은 "남편을 자기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남자들끼리 하는 말로, 암탉 울면 집안 망한다는 식으로 아내들의 전횡을 흉보는 농담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는 사뭇 다릅니다. 이 말 역시 비꼬는 반어가 아니라, 정말로 "현명한 아내 말 잘 듣는 남편치고 인생 잘 안 풀리는 사람 못 봤다"는 식으로 교훈이 전달됩니다. 못된 놈들도 많지만 대개는 아내를 귀여워하고 극진히 위하면서도 자기 앞가림은 확실히 해 주는 멋진 사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요즘 페미니즘의 지탄 대상인 "과장된 기사도"하고도 또 다릅니다. 이뿐 아니라 "여태 여덟 번도 넘게 남편을 바꾼 나이지만, 그게 어떻다는 거냐?"라며 진취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표방하는 여성도 등장합니다. 이상에서 보듯, 초서는 심지어 여성관 면에서도 시대를 많이 앞서간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은 무엇보다 아동, 청소년에게 마음 놓고 읽힐 수 있기도 해야 합니다. 이 책은 어떨까요? <데카메론>과 달리 저속한 성 묘사가 적고 세계관이 건전하고 낙천적이며, 사연들은 유쾌하고 발랄하면서도 일정한 교훈을 품습니다. 성인들은 혹 기차나 비행기에서 긴 여행을 할 때, 구수한 민담 듣는다고 생각하며 이 두꺼운 책에 마음 놓고 호기심 가득한 정신을 맡겨도 좋을 겁니다. 이런 고전의 장점은 일단 재미나게 술술 읽히며, 그 와중에 은근 정신의 개운한 정화도 부수적으로 챙길 수 있다는 데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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